‘호랑이’로 불린 시리아 장군 수헤일 알하산 이야기

그리고 그의 젊은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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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로 불린 시리아 장군 수헤일 알하산 이야기

출신 및 초기 복무

수헤일 알하산(Suheil al-Hasan)은 1970년 시리아 라타키아주에서 태어났다.

알하산은 알라위파(Alawites)다. 알라위파는 이슬람 시아파와 관련된 종교 공동체로, 교리에는 이슬람교와 기독교, 고대 근동의 일부 전통이 함께 나타난다. 라타키아에서는 알라위파가 인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시리아의 군부와 국가기관에서도 전통적으로 요직을 맡아 왔다.

주류 이슬람 규범이 동성 간 성행위를 엄격히 금하는 것과 달리, 이 문제에 대한 알라위파의 태도는 덜 단정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종교 관행과 세계관도 흔히 더 자유롭고 관용적이라고 인식된다. 알라위파 전통은 외적 규범의 엄격한 준수보다 내적 영성과 상징을 더 중시한다.

1991년 알하산은 시리아 아랍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여러 공군 부대와 방공사령부에서 복무했다.

그 뒤 공군 정보부로 전출되었다. 공개된 보도에 따르면 그는 그곳에서 치밀한 분석가로 인정받았으며, 테러 조직망을 찾아내 무력화하는 일을 맡았다.

2000년대에는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알카에다 조직에 잠입했고, 그 결과 조직원 여러 명이 체포되었다. 이 일로 그는 시리아 보안기관에서 가장 신뢰받고 결단력 있는 장교 가운데 한 명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사생활, 평판, 그리고 정권 내에서의 이미지

수헤일 알하산은 기혼자다. 소문에 따르면 아들이 하나 있지만 시리아 내전이 시작된 뒤로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동료들과 부하들은 그를 농담을 거의 하지 않고 직무에만 전적으로 집중하는 지극히 진지한 사람으로 묘사한다. 그는 또한 집권 정권에 대해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유지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알하산은 시에 대한 관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확성기로 자작시를 낭송하며 적에게 말을 걸고, 항복을 거부하면 어떤 결과를 맞을지 경고하곤 했다. 자신은 적에게 항복할 기회를 주지만, 그들이 계속 저항하거나 합의를 어겼다고 판단하면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알하산은 군사적 성과로 시리아 정부 지지자들 사이에서 높은 위상을 얻었다. 전공과 전술가로서의 명성 덕분에 친정부군을 대표하는 인물이 되었고, 자동차와 광고판에 그의 사진이 등장하는 등 개인숭배 조짐까지 나타났다.

아사드 정권이 붕괴하기 전에는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동생 마헤르 알아사드(Maher al-Assad) 다음으로 시리아군에서 영향력 있는 장군으로 여겨졌다.

남성들과의 관계

수헤일 알하산은 최측근 동료들과, 일각에서 그의 연인으로 추정하는 남성들과 가깝게 지내며 자주 이들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선과 비전투 지역에서 찍힌 여러 사진에는 그가 이 남성들을 껴안거나 입 맞추는 모습이 담겨 있다.

알하산의 연인으로 추정된 인물 가운데 한 명은 아흐메드 칼라프(Ahmed Khalaf)였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장군을 수행하다 2019년 이들리브주 전선에서 지뢰를 밟아 숨졌다.

알 하산과 아흐메드 칼라프
알 하산과 아흐메드 칼라프

수헤일 알하산의 성적 지향을 단정할 수는 없다. 아랍 문화에서 남성 간의 포옹과 입맞춤은 연애 감정보다 우정과 형제애, 충성의 표현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친밀감의 표현이 그의 성적 지향과 관련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쪽도 뒷받침할 만한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으므로 판단은 유보해야 한다.

알 하산과 아흐메드 칼라프
알 하산과 아흐메드 칼라프

군사 경력 및 내전에서의 역할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알하산은 주요 군사작전을 맡았다. 대령이던 2011년에는 라타키아 외곽에서 알카에다 무장세력에 맞선 작전을 지휘했다. 2013년에는 반정부 세력과의 전투에서 거둔 성과로 중앙사령부의 주목을 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를 계기로 그를 더 중요한 전선에 배치하라는 건의가 나왔다.

내전 기간 알하산은 여러 주요 작전에 참여했다. 많은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들에서는 초토화 전술을 비롯한 가혹한 방식이 동원되었다. 파괴적인 공습 뒤에는 병력이 집집마다 진격하며 소탕 작전을 벌였다. 이 전략은 남은 저항을 억누를 수 있었지만 막대한 민간인 피해를 낳았다.

2013년 알하산은 ‘타이거 부대(Tiger Forces)’로 알려진 정예부대를 창설했다. 이 부대는 알레포와 동구타 포위전을 비롯한 대규모 공세로 악명을 떨쳤다. 이 작전들은 기반시설을 극심하게 파괴하고 민간인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 갔다.

게다가 알 하산은 이 작전들 중 화학 무기를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의 행동은 국제사회의 규탄을 불러일으켰으며, 대규모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한 제재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리아 지도부의 신임을 유지했다. 반란을 진압하는 그의 방식은 잔혹하지만 효과적이라고 평가받았다. 덕분에 그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지휘관 중 한 명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고, 타이거 부대는 국가의 전략적 요충지 통제권을 장악하기 위한 싸움에서 정권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타이거 부대, 러시아, 그리고 제재

알하산의 부대는 러시아로부터 상당한 지원을 받았다. 병사들은 주로 러시아제 무기와 장비를 사용했고 러시아 군사고문단이 훈련에 참여했다. 이는 알하산과 모스크바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 주었다.

전문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알 하산은 러시아를 시리아 정부의 핵심 동맹국으로 간주했다. 이 점은 이란(Iran)을 지향하던 일부 군사 및 정치 인사들과 그를 구분 짓는 요소였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Le Monde)*는 시리아의 권력을 둘러싼 경쟁에서 알하산이 바샤르 알아사드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군 내부의 인기와 전공으로 강화된 개인숭배가 이런 추측의 근거였다.

알하산은 전쟁범죄와 인권침해에 연루된 혐의로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다. 이 조치는 그의 금융 활동과 국제기관과의 접촉을 제한하지만, 관측통들에 따르면 시리아 내부의 입지를 약화시키지는 못했다.

2024년 임명 및 정권 붕괴 이후의 상태

2024년 4월 9일 수헤일 알하산 소장은 시리아 아랍군 특수부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2024년 11월 말 전투가 재개되자 시리아 정권은 알하산 휘하 특수부대를 포함한 대규모 병력을 이슬람주의 세력에 맞서 배치했다. 이들은 알레포에서 밀고 내려오는 이슬람주의 세력을 저지하기 위해 하마와 그 주변의 전략적 요충지로 파견되었다.

반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2024년 12월 2일 최소 한 차례의 드론 공격이 최전선에 가까운 하마 북부의 군 관계자들을 덮쳤다. 알리 알리파이(Ali al-Rifa’i)라고 밝힌 반군 대변인은 수헤일 알하산 장군이 표적 가운데 한 명이었다고 말했다. 알하산은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4년 12월 아사드 정권 붕괴 뒤 알하산은 모스크바로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5년 유럽연합은 그를 제재 명단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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