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남성 전용 수영장의 알몸 수영 의무화 역사
20세기의 위생 규정이 YMCA 수영장과 학교에 남성 알몸 수영 문화를 만들고, 뜻밖에 일부 게이 남성의 만남 공간도 제공한 과정.
목차

미국의 여러 학교와 남성 전용 시설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일부 지역에서는 1980년대까지 소년과 남성에게 실내 수영장에서 알몸으로 수영하도록 요구했다.
이 전통은 엄격한 위생 조치로 시작되어 점차 일반 학교, 엘리트 대학교, 그리고 기독교 청년회(YMCA,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 스포츠 센터로 퍼져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의학적 규칙은 “근육질 기독교(muscular Christianity)“의 이데올로기 및 애국적인 구호들과 얽히게 되었다.
이처럼 신체 노출이 의무였던 남성 전용 공간은 뜻밖에도 일부 게이 남성들이 서로 알아보고 만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남성 간 성행위가 법으로 엄하게 처벌되던 시기의 일이었다.
수영장이 존재하기 전 미국 남성들의 알몸 수영
실내 수영장이 등장하기 전, 미국 남성들은 대개 강과 호수에서 알몸으로 수영했다. 심지어 정치인들도 이를 즐겼다. 예를 들어, 1820년대에 55세였던 존 퀸시 애덤스(John Quincy Adams) 미국 대통령은 포토맥(Potomac) 강에서 정기적으로 긴 알몸 수영을 즐겼다.
이 관습은 미술에도 나타났다. 미국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Thomas Eakins)는 1884~1885년에 호수에서 알몸으로 헤엄치는 남성들을 그린 『수영하는 곳(The Swimming Hole)』을 제작했다. 주문자는 결국 작품을 인수하지 않았다. 에이킨스는 이듬해 혼성 수업에서 남성 모델의 알몸을 노출한 일을 둘러싼 논란 끝에 펜실베이니아 미술 아카데미에서 물러났다. 두 사건 모두 당시 남성 누드를 둘러싼 긴장을 보여주지만, 그림 한 점 때문에 곧바로 해고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초창기의 수영장은 더러웠다
19세기에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노동자들은 이 습관을 대도시로 가져왔다. 뉴욕(New York)에서 그들은 허드슨(Hudson) 강 한복판에서 떼 지어 알몸 수영을 즐겼다. 당국은 이러한 관습을 통제하고 실내로 옮기려 노력했다.
1868년 보스턴(Boston)에 최초의 시립 수영장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1885년 브루클린(Brooklyn)에 최초의 실내 레크리에이션 수영장이 등장했는데, 바로 YMCA 건물에 지어진 것이었다. YMCA는 미국에서 가장 큰 종교 단체 중 하나였으며, 그들의 건물은 역사적으로 젊은 이주민들을 위한 체육관, 수영장, 그리고 저렴한 기숙사를 갖추고 있었다.
초기의 수영장들은 건강에 위험했다. 물은 여과되지 않았고, 일주일에 두어 번 물을 빼내는 것이 전부였다. 수질 정화 펌프는 1910년경에야 나타나기 시작했고, 염소 소독은 1913년에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는 고여 있는 더러운 물이 콜레라와 소아마비의 발병을 위협했기 때문에 엄격한 안전 조치가 필요했다.
수영복이 금지된 이유
필터의 가장 큰 적은 그 시절 흔했던 양모 수영복으로 밝혀졌다. 양모는 거리의 박테리아를 옮겼고, 양모에서 떨어져 나온 섬유는 펌프를 금세 막히게 했다. 면 직물 역시 염소를 너무 많이 흡수하여 물의 화학적 균형을 망가뜨렸기 때문에 부적합했다.
가장 간단하고 저렴한 해결책은 남성의 수영복 바지 착용을 전면 금지하는 것이었다. 1926년 미국 공중 보건 협회(American Public Health Association)는 공식 규정을 발표했다.
“남성 전용 실내 수영장에서는 알몸 수영을 의무화해야 한다. 여성 전용 실내 수영장에서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수영복을 착용해야 한다.”
— 미국 공중 보건 협회
물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수영객은 알몸 상태로 비누로 몸을 씻어야 했다. 설계 엔지니어인 윌리엄 폴 거하드(William Paul Gerhard)는 1922년에 알몸 상태의 방문객들을 대상으로 한 피부병 의학 검사가 학교, 군대 목욕탕, YMCA 센터에서 가장 체계화하기 쉬웠다고 썼다.
그러나 여성들에게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 적용되었다. 소녀들에게는 얌전한 면 수영복이 제공되었고, 학교는 수업 후 세탁실에서 이를 철저히 살균했다. 1958년의 한 체육 교과서에는 이렇게 명시되어 있다. “소녀들은 살균된 수영복을 입는 것이 허용된다… 소년들에게는 알몸 수영이 요구된다.”

노출은 어떻게 남성성과 연결되었는가
위생 논리는 당시 유행하던 ‘근육질 기독교(muscular Christianity)’ 사조와도 맞아떨어졌다. 스포츠와 엄격한 신체 훈련이 영혼을 단련하며 건강한 몸은 신의 성전이라는 개신교적 이상이었다.
주최 측은 수영장을 도시 거주자들에게 기독교적 가치와 자기 통제력을 심어주는 수단으로 보았다. 현대의 미국 연구자 브라이언 호프먼(Brian Hoffman)은 그의 2015년 저서 『벌거벗은: 미국 누디즘의 문화사(Naked: A Cultural History of American Nudism)』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벌거벗은 몸과 옷을 입지 않고 수영하는 것 자체가 죄악으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기독교의 깃발 아래 존재했다.”
— 브라이언 호프먼
학교에서 이러한 엄격한 규칙은 병역 전에 “남성의 품성을 단련한다"는 이유로 정당화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알몸 수영이 애국적인 의무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직물 부족으로 인해 물자가 군복과 낙하산에 쓰였기 때문에, 수영복 바지를 거부하는 것은 전쟁 수행을 돕는 것으로 둔갑했다.

널리 퍼진 관습: 학교와 아이비리그
옷을 입지 않고 수영하는 것은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1930년대에서 1950년대 사이의 지역 신문들은 이를 평범한 어조로 보도하며, 수영하는 사람들의 사진을 싣고 수업 시간에 수영복 바지가 엄격히 금지된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켰다.
흔히 이 규범은 단순히 돈을 쓰기 싫다는 이유로 유지되었다. 예를 들어, 1973년 미네소타(Minnesota)주 한 마을의 교육 위원회는 저학년 학생들에 대한 이 규정 폐지를 거부했는데, 2,500명의 남학생을 위해 수영복 바지를 사는 것은 너무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였다.
미국 최고의 엘리트 대학교인 예일(Yale), 하버드(Harvard), 코넬(Cornell) 등 이른바 아이비리그(Ivy League)에 속한 대학들에서는 이 규정이 신입생의 필수 테스트가 되었다.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알몸으로 일정 거리를 수영하여 비상시 해군에서 생존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증명해야 했다.
예일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에 위생 처리를 위해 압력을 가해 다리 사이로 물을 위로 쏘아 올리는 특수 장치를 통과해야 했다. 코넬 대학교에서는 최소한 1970년대 후반까지 알몸 수영 테스트가 실시되었다. 심지어 유명한 화학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라이너스 폴링(Linus Pauling)이 수영을 할 줄 몰라 대리인을 고용해 대신 알몸으로 테스트를 치르게 했다는 학생들의 신화까지 있었다.

YMCA는 어떻게 게이 남성들의 비밀 장소가 되었는가
아이러니하게도 남성 간 성행위가 징역형으로 처벌될 수 있던 시기에 기독교 단체인 YMCA의 일부 시설은 게이 남성들이 비교적 눈에 띄지 않게 만나는 장소가 되었다. 공동 샤워실과 탈의실, 저렴한 숙소가 한 건물에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로 넘어가던 무렵에도 일부 YMCA 지도자들은 오랜 세월 함께 살며 강한 정서적 동반 관계를 맺었다. 다만 ‘보스턴 결혼(Boston marriage)’은 주로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 두 명의 공동생활을 가리키던 말이므로, 남성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신체 노출이 일상적인 샤워실은 즉흥적인 성적 만남을 찾는 *크루징(cruising)*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때로는 큰 사건으로 번졌다. 1912년 포틀랜드 언론은 사회적으로 존경받던 YMCA 이용자들을 대규모 ‘남색(sodomy)’ 혐의로 공개 비난했고, 1919년에는 뉴포트 해군 기지 에서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YMCA 운영진은 남성 간 성행위가 의심되는 이용자를 찾아내 쫓아내려 했지만, 일부 안내 직원은 이를 묵인했다.
이 숨겨진 문화는 역사학자 조지 촌시(George Chauncey)의 저서 『게이 뉴욕(Gay New York)』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용자들은 장난 삼아 YMCA의 약자를 “내가 왜 이렇게 게이인지(Why I’m So Gay)“로 풀이했고, 1978년 전설적인 디스코 그룹 빌리지 피플(The Village People)은 노래 “Y.M.C.A.“를 발매하여 이 지하 게이 상징을 전 세계적인 팝 히트곡이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만들었다.
이 이미지는 수십 년 동안 협회를 괴롭혔다. 2012년에도 마이클 키스터(Michael Keister)라는 한 이용자가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의 한 YMCA 지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기독교 가족 가치"라는 외관 뒤에 “게이 매음굴"이 숨겨져 있으며, 남성 탈의실에서 공공연한 성관계가 벌어지는 것을 자신이 직접 목격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이 사건은 나중에 법원에 의해 기각되었다).
이 모든 것이 끝난 이유
알몸 수영의 전통은 196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 과학자들은 물속의 염소를 정밀하게 조절하는 법을 알아냈고, 털이 빠지는 양모는 빨리 마르면서도 필터를 망가뜨리지 않는 가벼운 합성 나일론으로 대체되었다. 위생이라는 주된 논거가 스스로 무너져 내렸고, 1962년 의료 전문가들은 국가 지침에서 알몸 수영에 대한 권고안을 삭제했다.
1972년 제정된 미국 연방법 타이틀 IX(Title IX)도 관행의 쇠퇴를 재촉했다. 이 법은 교육에서 성차별을 금지했고, 그에 따라 남녀가 함께하는 체육 수업이 확대되면서 남학생만 알몸으로 수영시키는 관행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타이틀 IX가 모든 체육 수업의 남녀 합반을 일률적으로 의무화한 것은 아니지만, 성별에 따라 다른 복장 규칙을 적용할 근거는 약해졌다.
1980년 무렵에는 시카고를 비롯한 대도시 공립학교도 이 관행을 폐지했다. 그러나 일부 사립 남학생 클럽에서는 1980년대 중반까지 남아 있었고, 폐쇄적인 환경과 강제된 신체 노출이 코치의 학대에 악용된 사례도 있었다.
더욱이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신체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크게 변했다. 예전에는 벌거벗은 십 대 소년 무리가 순수한 체육 활동의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남성용 성인 광택 잡지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대중적인 노출은 성(sex)과 확고하게 연관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성소수자 운동도 권리운동을 본격화하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게이 바와 성소수자 단체 등 공개적으로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늘면서 YMCA 샤워실에 의존할 이유도 줄었다. 1990년대에는 보수적인 일부 대학과 엘리트 클럽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남성 알몸 수영 의무도 사라졌다.
참고문헌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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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LGBT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