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리아 시대의 호모에로티시즘: 허버트 미첼 컬렉션 사진 속 남성 간 친밀감

남성들이 서로 껴안고 손을 맞잡은 1850~1890년대 초상사진.

목차
빅토리아 시대의 호모에로티시즘: 허버트 미첼 컬렉션 사진 속 남성 간 친밀감

아래 사진은 대부분 19세기 후반, 대략 1850~1890년대에 촬영한 아마추어 스튜디오 초상이다. 남성들은 서로 껴안거나 손을 맞잡고, 어깨나 무릎에 손을 얹는 등 가까이 몸을 맞댄 채 포즈를 취한다.

이 사진들은 미국의 사서이자 수집가로 컬럼비아대학교 에이버리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일한 리브스 허버트 미첼(Reeves Herbert Mitchell, 1924~2008)의 컬렉션에 속한다. 200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사진부가 그의 사진 컬렉션 중 상당 부분을 인수했다. 미첼이 2008년 세상을 떠난 뒤에는 유증을 통해 훨씬 더 많은 자료를 받았다.

갤러리

창문이 그려진 배경막 앞에서 붓과 페인트통을 든 화가 세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창문이 그려진 배경막 앞에서 붓과 페인트통을 든 화가 세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틴타입은 값이 저렴했던 초기 사진 기법이다. 대개 검은 래커를 칠한 얇은 철판 위에 이미지를 만들었다.

서로 어깨를 감싸고 앉은 남성 세 명. 작자 미상 앰브로타입, 1860년대.
서로 어깨를 감싸고 앉은 남성 세 명. 작자 미상 앰브로타입, 1860년대.

서로 껴안은 남성 두 명. 한 명은 다른 이의 무릎에 앉아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80~1890년대.
서로 껴안은 남성 두 명. 한 명은 다른 이의 무릎에 앉아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80~1890년대.

사진에는 노동자와 군인, 교사, 장인, 전문직 종사자 등 배경과 직업이 다양한 남성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이름도 전하지 않고 생애를 추적할 수도 없으며 촬영 맥락도 사라졌다. 따라서 이들의 관계가 무엇이었는지는 여러 해석에 열려 있다.

벤치에 앉은 남성 두 명. 한 명이 다른 이의 다리에 손을 얹고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벤치에 앉은 남성 두 명. 한 명이 다른 이의 다리에 손을 얹고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앉아 있는 남성 두 명. 한 명이 다른 이의 무릎에 앉아 있고 손의 위치가 상당히 암시적이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80년대.
앉아 있는 남성 두 명. 한 명이 다른 이의 무릎에 앉아 있고 손의 위치가 상당히 암시적이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80년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이 사진을 곧바로 ‘서로의 품에 안긴 연인들의 초상’으로 보기보다, 프로이트 이전 시대 남성들 사이에 흔했던 ‘자연스럽고 자의식 없는 친밀감과 신체 접촉’의 흔적으로 먼저 보자고 제안한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남성들이 서로 껴안고 손을 잡으며 바짝 붙어 포즈를 취해도 반드시 성적인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는 남성 두 명. 한 명이 다른 이의 무릎에 앉아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80~1890년대.
담배를 피우는 남성 두 명. 한 명이 다른 이의 무릎에 앉아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80~1890년대.

콧수염을 기르고 서로 어깨를 감싼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50년대.
콧수염을 기르고 서로 어깨를 감싼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50년대.

다게레오타입은 가장 이른 사진 기법 가운데 하나로 은도금한 금속판에 이미지를 만들었다.

손을 맞잡은 남성 두 명. 한 명은 여성복을 입고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손을 맞잡은 남성 두 명. 한 명은 여성복을 입고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오늘날 관람자는 이런 사진을 숨겨진 동성애의 증거로 읽을 수 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었겠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해석은 아니다. 사진 속 인물들은 가까운 친구나 형제, 전우일 수도 있다. 19세기에는 남녀가 대체로 성별에 따라 분리된 동성사회적(homosocial) 세계에서 살았고, 이성과의 친밀한 교류는 흔히 결혼 뒤에야 시작됐다는 맥락도 중요하다.

20세기에 들어 남성 간 우정의 규범은 크게 달라졌다. 애정 어린 말과 포옹, 신체적 친밀감처럼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던 문화는 점차 절제되는 쪽으로 바뀌었다. 남성들은 ‘너무 친밀해’ 보일 수 있는 감정 표현과 몸짓을 갈수록 피했다.

손을 맞잡고 앉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80년대.
손을 맞잡고 앉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80년대.

상아 장식 지팡이를 들고 앉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50년대.
상아 장식 지팡이를 들고 앉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50년대.

같은 옷을 입고 앉은 젊은 여성 두 명.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40년대.
같은 옷을 입고 앉은 젊은 여성 두 명.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40년대.

손을 맞잡고 서로 어깨를 감싼 미국 남북전쟁의 북군 병사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60년대.
손을 맞잡고 서로 어깨를 감싼 미국 남북전쟁의 북군 병사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60년대.

지팡이를 교차해 든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80년대.
지팡이를 교차해 든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80년대.

밀짚모자를 쓴 젊은 남성 두 명. 한 명이 다른 이의 무릎에 앉아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밀짚모자를 쓴 젊은 남성 두 명. 한 명이 다른 이의 무릎에 앉아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서로 어깨를 감싸고 앉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60년대.
서로 어깨를 감싸고 앉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60년대.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껴안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80년대.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껴안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80년대.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껴안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껴안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1850년경.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1850년경.

야외 풍경이 그려진 배경막 앞에서 줄무늬 재킷을 입은 젊은 남성이 다른 남성의 무릎에 앉아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60~1880년대.
야외 풍경이 그려진 배경막 앞에서 줄무늬 재킷을 입은 젊은 남성이 다른 남성의 무릎에 앉아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60~1880년대.

배경막은 사진관에서 쓰던 그림이 그려진 천이나 판으로, 창문과 거리, 기둥, 정원 등을 표현했다. 이런 무대 장치는 초상을 더 풍성하고 낭만적으로 보이게 했다.

곤봉형 운동기구인 인디언 클럽을 든 반라의 장사가 담긴 입체사진 케이스.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53~1860년대.
곤봉형 운동기구인 인디언 클럽을 든 반라의 장사가 담긴 입체사진 케이스.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53~1860년대.

스테레오그래프는 같은 장면을 약간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 두 장으로 이루어진다. 스테레오스코프라는 장치로 보면 입체감이 생긴다.

의자 위에 쪼그려 앉은 나체 남성. 작자 미상 앰브로타입, 1850~1860년대.
의자 위에 쪼그려 앉은 나체 남성. 작자 미상 앰브로타입, 1850~1860년대.

앰브로타입은 유리판에 이미지를 만드는 사진 기법이다. 유리 네거티브를 어두운 바탕에 놓으면 양화, 곧 명암이 정상인 사진처럼 보인다. 깨지기 쉬워 대개 케이스에 넣어 보관했다.

목공 도구를 든 젊은 남성 두 명. 한 명은 앉고 다른 한 명은 서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90년대.
목공 도구를 든 젊은 남성 두 명. 한 명은 앉고 다른 한 명은 서 있다.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90년대.

캘리퍼스와 T자, 컴퍼스를 들고 앉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캘리퍼스와 T자, 컴퍼스를 들고 앉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틴타입, 1870~1880년대.

권투 자세를 취한 남성 두 명과 그중 한 명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는 세 번째 남성. J. C. 배첼더 촬영 틴타입, 1860~1880년대.
권투 자세를 취한 남성 두 명과 그중 한 명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는 세 번째 남성. J. C. 배첼더 촬영 틴타입, 1860~1880년대.

격자무늬 바지와 나비넥타이, 부드러운 챙 모자를 착용하고 앉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50년대.
격자무늬 바지와 나비넥타이, 부드러운 챙 모자를 착용하고 앉은 젊은 남성 두 명. 작자 미상 다게레오타입, 1850년대.

허버트 미첼에 대하여

리브스 허버트 미첼은 미국의 사서이자 서지학자, 수집가로 1924년부터 2008년까지 살았다.

1924년 11월 18일 메인주 뱅고어에서 태어나 2008년 10월 말 뉴욕 맨해튼에서 83세로 숨졌다. 변호사는 파킨슨병 합병증이 사망 원인이라고 밝혔다. 문서와 출판물에 가장 자주 언급되는 가까운 친족은 시애틀에 살던 여동생 도로시 미첼이다.

미첼은 인문학과 도서관학을 공부했다. 1946년 메인대학교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1949년 컬럼비아대학교 도서관학교를 졸업해 도서관학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시카고 미술관과 코넬대학교에서 일했다. 예술품과 학술 컬렉션을 다룬 경험은 훗날 주된 경력을 펼칠 컬럼비아대학교로 돌아가기 전의 밑거름이 됐다.

1960~1991년에는 컬럼비아대학교의 건축·미술 전문 도서관인 에이버리 도서관에서 근무했다. 주로 서지학자로 일하며 오랫동안 장서 개발을 맡았다. 대학 자료는 그를 학술지와 논문집의 건축 관련 글을 찾게 해 주는 『에이버리 건축 정기간행물 색인(Avery Index to Architectural Periodicals)』의 수석 색인자라고 소개한다. 그의 작업은 건축학 연구에 큰 기여를 했다.

미첼은 매우 적극적으로 장서를 모았다. 경력 초기에 희귀하거나 권위 있어 보이지 않아도 역사적 가치가 큰 독특한 자료를 도서관이 자주 놓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연극 미술가이자 디자이너 랜돌프 건터(Randolph Gunter)의 유품 경매가 전환점이었다. 이런 자료가 학술 기록에서 영영 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한 뒤 헌책상과 고서상들을 통해 희귀 출판물을 의도적으로 찾아다녔다.

런던과 파리, 밀라노, 로마의 책 시장과 박람회를 정기적으로 찾았고 미국에서도 뉴욕과 보스턴을 비롯한 여러 도시를 다녔다. 대학 자료에 따르면 그의 노력 덕분에 에이버리 도서관은 19세기 후반부터 오늘날까지 미국의 도시와 건물, 거리, 실내 등 인공 환경을 보여 주는 인쇄물과 사진을 세계에서 가장 폭넓게 갖춘 기관 가운데 하나가 됐다.

미첼은 광고 책자와 안내서, 카탈로그처럼 애초에 오래 보존하려고 만든 것이 아닌 인쇄물인 에페메라(ephemera)에 주목한 것으로 유명했다. 오래된 건축 논문과 도면뿐 아니라 건축자재와 장식재, 페인트, 벽지, 배관설비 등의 업계 상품 카탈로그도 모았다. 평범해 보이는 자료는 역사적 실내 공간을 연구하거나 복원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자원이 됐다. 에이버리는 미첼 덕분에 미국 건축업계 카탈로그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게 됐다.

1990년 에이버리 도서관 개관 100주년에는 건축사가 아돌프 플라체크(Adolf Placzek)와 함께 ‘에이버리의 선택: 건축서의 5세기(Avery’s Choice: Five Centuries of Architectural Books)’를 기획했다. 1991년 은퇴 때는 로 기념도서관 원형 홀에서 ‘미첼의 선택(Mitchell’s Choice)’ 전시가 열렸다. 그가 에이버리를 위해 수집한 초기 건축 논문과 건축업자 카탈로그, 도시 전경을 담은 이른바 도시경관 도서 등 약 50점이 소개됐다.

30년간 미첼은 ‘미국 경관 도서 컬렉션(American View Book Collection)’도 만들었다. 차고 세일과 벼룩시장, 헌책방을 다니며 미국의 도시와 지역을 다룬 삽화 출판물 약 4,800점을 모았다.

개인적으로는 스테레오그래프와 다게레오타입, 마욜리카 도자기, 파리안 웨어 자기 인형, 19세기 건축서로 채운 책장, 수많은 소형 에페메라 등 매우 다양한 물건을 모았다. 동료들은 그의 개방성도 기억했다. 연구 주제가 자신의 관심사와 겹치면 책과 전시를 위해 소장 자료를 기꺼이 내주었다.

그의 유산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의 인연은 특별하다. 2007년 미술관 사진부는 1850~1920년경의 스테레오그래프 3,885점을 포함한 대규모 ‘허버트 미첼 컬렉션’을 인수했다. 별도 수집품으로 등록된 이 컬렉션은 그의 소장 규모를 잘 보여 준다. 2008년 미첼이 죽은 뒤 미술관 여러 부서는 유증으로 다양한 기법의 사진과 건축 도면, 앨범, 스크랩북, 종이 오리기 작품을 받았다. 소장품 번호로 볼 때 수량은 수백에서 수천 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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