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대통령의 비밀 작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해군의 게이 남성 색출에 100만 달러를 쓴 사연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의 미 해군에서 ‘좆을 빠는 자들과 항문으로 받는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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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미 해군은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 기지에서 동성 간 관계가 의심되는 수병을 겨냥해 비밀 작전을 벌였습니다.
해군 지휘부는 신분을 숨긴 자원자를 고용했습니다. 이들은 용의자와 성관계를 한 뒤 군법회의에서 불리한 증언을 했습니다.
‘섹션 A(Section A)’로 불린 이 작전은 해군부 차관보 프랭클린 델러노 루스벨트가 승인했습니다. 그는 훗날 미국 제32대 대통령이 되어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미국을 이끌었습니다.
미국 매체 『더 나인틴스(The 19th)』의 보도와 역사가들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이 사건은 군이 성적 함정수사와 군사 사법제도를 이용해 민간 법원의 구제 절차 없이 사람들을 내쫓은 방식을 보여 줍니다.
『더 19스』는 이 작전의 명시된 목표를 당시의 직설적인 언어로 보도했습니다.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의 미 해군에서 ‘좆을 빠는 자들과 항문으로 받는 자들’을 제거하는 것.”
— 『더 나인틴스』
항구, 어머니들의 두려움, 그리고 기지 “정화”
제1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르자 많은 고위 장교가 항구 도시의 ‘도덕성’을 문제 삼았고, 공중도덕을 둘러싼 논의에는 청교도적인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섹션 A 작전을 연구한 역사가 셰리 제인(Sherry Zane)은 해군의 계획을 당시 미국 어머니들 사이에 퍼진 두려움과 연결합니다. 항구 도시를 악덕과 방탕의 공간으로 여겨 아들을 그곳에 보내기를 걱정했다는 것입니다. 해군 지휘부는 대중을 안심시키고 뉴포트 기지가 통제 아래 ‘정화’됐다는 인상을 주려 했습니다.
“미국 어머니들은 아들을…… 악덕과 연결해 생각한 항구 도시로 보내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해군은 어머니들이 더 안심하도록 그 지역을 정화하려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군이 법적 권한도 없이 이른바 변태와 타락한 자를 제거할 힘을 갖는 문제입니다.”
— 셰리 제인
제인에 따르면 당시 해군부 차관보였던 루스벨트는 작전을 시작하기 전 절차가 합법적으로 보이도록 법률가들과 상의했습니다.
A 구역의 방법
방법은 단순했습니다. 신분을 숨긴 요원이 의심받는 수병에게 동성 간 성접촉을 먼저 시도하고, 이후 상관에게 보고했습니다.
“한 번으로 끝난 것도 아닙니다. 위장 요원이 한 사람을 잡아넣기 전에 서너 차례 성관계를 하기도 했습니다.”
— 셰리 제인
증거를 수집하는 데 왜 그렇게 많은 만남이 필요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같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글쎄요,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한편으로는 확실히 하려 했고 충분한 증거가 필요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질문도 나옵니다. 그저 이 남자들과 성관계하는 일을 즐겼던 것은 아닐까요?”
— 셰리 제인
예산과 의회
미군과 해군의 성소수자 박해를 다룬 『라벤더 금지령(The Lavender Bans)』의 저자이자 오하이오주립대학교 강사인 레아 드뷔시(Rhea Debussy)는 해군이 작전에 1919년 당시 5만 달러를 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오늘날 100만 달러가 조금 넘습니다. 지출과 수법이 의회에 알려지자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결국 정책을 놓고 의회 위원회에 불려 갔고, 위원들의 반응은 ‘당신들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와 같았습니다.”
— 레아 드뷔시
군사법원 기록
1919년 8월 무렵 작성된 뉴포트 해군훈련소 군법회의의 자필 기록은 당시 재판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보여 줍니다. 혐의명에는 ‘남색’과 ‘추문을 일으킨 행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기록에서 해럴드 J. 트러브쇼(Harold J. Trubshaw)는 추문 행위와 남색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징역 10년과 불명예 제대를 선고받았습니다.
닐스 C. M. 존슨(Nils C. M. Johnson)은 남색 혐의에서 무죄가 됐습니다.
해리슨 A. 라이드아웃(Harrison A. Rideout)의 이름에는 긴 줄이 그어져 있고, 1919년 12월 뉴포트 특별군법회의로 사건을 넘겼다는 메모가 있습니다.
다른 항목에도 무죄와 2년·5년·7년가량의 징역형이 뒤섞여 있어 규칙이 선택적으로 적용됐음을 보여 줍니다.
제인에 따르면 섹션 A 작전으로 수병 22명이 ‘일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민간인 16명도 함께 붙잡혔습니다.
처벌에는 당시의 고정관념이 반영됐습니다. 성행위에서 이른바 ‘능동적’ 역할을 했다고 여겨진 남성은 죄가 덜하다고 보거나 당시 의미의 ‘동성애자’로 분류하지 않아 비교적 가볍게 처벌했습니다. ‘수동적’ 역할을 했거나 ‘지나치게 여성적’이라고 판단된 사람에게는 더 무거운 형이 내려졌습니다.
판결 이후
군법회의 판결은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의 삶을 무너뜨렸습니다. 징역이 최고 20년에 이른 사례도 있었습니다. 장기형을 피하더라도 불명예 제대는 보훈 혜택과 사회적 지위를 잃고 취업에 큰 어려움을 겪게 하는 오래가는 낙인이었습니다. 군은 민간 사법의 관할 밖에서 원치 않는 사람을 몰아낼 수단을 갖게 된 셈입니다.
“특히 군에서 퀴어 정체성을 범죄화하면 이 남성들의 삶 전체에 수많은 파장이 생깁니다. 징역형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불명예 제대에 따르는 낙인, 혜택과 존중을 잃는 일 등 모든 것이 계속 따라다닙니다.”
— 레아 드뷔시
루스벨트와 스캔들의 기억
섹션 A의 수법과 비용이 드러나자, 제인은 연구 문헌을 인용해 상원의 반응을 일부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상원의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루스벨트가 다시는 공직을 맡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다.”
— 셰리 제인
결국 이 추문은 루스벨트의 경력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훗날 대통령으로 남긴 업적에 가려지면서 국가적 기억에서도 점차 희미해졌습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 Rhea Debussy. The Lavender Bans. 2026.
- 『더 나인틴스(The 19th)』. “FDR의 100만 달러짜리 게이 군인 성적 함정수사의 기막힌 전말(The Wild Saga of FDR’s $1 Million Gay Military Sex Sting).” 2026. https://19thnews.org/2026/04/fdr-navy-military-gay-sex-sting-history/
🇺🇸 미국 LGBT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