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간 사랑을 그린 아타이 시집의 오스만 세밀화 세 점
18세기 오스만 제국의 수사본: 제국 내에서 남성 간의 사랑이 어떻게 재판받고, 조롱받고, 또 찬양되었는가.
목차

현대 독자에게 오스만 제국(Ottoman Empire)은 종종 엄격하고 보수적인 세계로 비친다. 그러나 현존하는 기록은 훨씬 더 복잡한 현실을 보여준다. 그 증거 가운데 하나가 오스만 시인 네비자데 아타이(Nev’îzâde Atâyî)의 시를 화려한 삽화와 함께 엮은 18세기 수사본이다. 이 책에는 남성 간의 사랑과 성적 관계를 다룬 세밀화가 실려 있다.
수사본 W.666의 역사
이 수사본은 역사가들에게 W.666이라는 코드로 알려져 있다. 1721년에 만들어졌으며, 20세기 초 미국 수집가 헨리 월터스(Henry Walters)가 이 책을 구입했다. 오늘날 이 책은 미국 볼티모어(Baltimore)에 있는 월터스 미술관(Walters Art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에는 오스만 튀르크어와 아랍어로 제작 정보를 기록한 두 개의 필사기, 곧 콜로폰(colophon)이 있다. 덕분에 필경사의 이름도 알 수 있다. 본문을 필사한 하이룰라 하이리 차부시자데(Hayrullah Hayri Çavuşzâde)는 1721년 5월에 작업을 마쳤다.
형식상 이 수사본은 다섯 편의 메스네비로 이루어진 고전 시집 함사(Khamsa), 곧 오스만 튀르크어로 *함세(Hamse)*에 해당한다. 그러나 필경사는 전통적인 구성을 따르지 않고 장편 운문인 메스네비(mesnevi) 네 편만 실었다. 사키나메(Sâkinâme) (술 따르는 자의 책), 네프하튈에즈하르(Nefhatü’l-Ezhâr) (꽃들의 숨결), 소흐베튈에브카르(Sohbetü’l-Ebkâr) (처녀들의 대화), 헤프트 한(Heft Hân) (일곱 가지 이야기)이다. 메스네비는 두 행씩 짝을 이루어 운을 맞추는 고전 운문 형식이다. 다섯 번째 작품 대신에는 아타이의 서정시를 모은 *디반(Divan)*이 들어갔다. 아마 후원자의 요청에 따른 구성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짧은 *가잘(ghazal)*도 장편 서사시 못지않게 높이 평가받았다.
이 책은 호화로워 보인다. 두꺼운 종이 위에 그려진 38점의 채색 삽화와 금박을 입힌 오리지널 가죽 장정을 자랑한다. 수사본 작업에는 전체 공방이 협력했다.
시인의 짧은 전기
시인 네비자데 아타울라 빈 야히야 아타이(Nev’îzâde Atâullah bin Yahyâ Atâyî, 1583–1634/35)는 우즈베크계의 저명한 이슬람 신학자 가문 출신이다.
그는 오스만 시에 접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대개 함세의 저자들은 페르시아(Persian) 고전들을 모방했다. 그들은 위대한 통치자와 신비주의적 사랑에 대해 썼다. 아타이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는 도시 리얼리즘(urban realism)이라 부를 수 있는 스타일을 창조했다. 시인은 이스탄불(Istanbul)의 거리, 커피하우스, 선술집, 광장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기꾼, 점잖은 학자, 순진한 젊은이들이 그의 시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타이의 텍스트는 풍자, 희극적 상황, 그리고 에로틱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리얼리즘은 저자의 직업과도 관련이 있다. 1605년 아타이는 이스탄불의 잔바지예 마드라사(Canbaziye Medresesi)에서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5년 뒤 승진을 기다리는 데 지친 그는 사법계로 옮겼다. 이후 발칸반도와 트라키아를 비롯한 제국 여러 지역에서 판사인 *카디(kadı)*로 일했다.
그가 1625년에 쓴 네프하튈에즈하르에 등장하는 간통자, 유혹자, 사기꾼은 단순히 관념적으로 빚어낸 유형이 아니었다. 실제 재판에서 마주칠 법한 인물들이었고, 아타이 역시 카디로서 그러한 사건을 다루었다.
아타이가 글을 쓰던 시대는 혼란스러웠다. 17세기 초 이스탄불에서는 엄격주의적 종교 운동인 카디자델리(Kadızadeli)가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그 지지자들은 커피하우스를 습격하고 이슬람 신비주의 전통의 수피들을 공격했다. 또 수피들이 지크르(dhikr) 의례로 황홀경에 든 채 아름다운 젊은이를 바라본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을 연민과 유머로 바라보는 아타이의 시는 엄격주의자들에 대한 대담한 문화적 응답으로 읽힌다.
시 네프하튈-에즈하르 속의 처벌과 수치심
59a면에는 네프하튈에즈하르의 한 장면을 그린 세밀화가 실려 있다. 박물관 도록에 붙은 역사적 제목은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남색 행위자(A Sodomite Disgraced)」이다. 그림은 남성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이 사람들 앞에서 모욕당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역사적 설명이 필요하다. 오늘날 성적 정체성을 가리키는 ‘동성애’라는 개념을 당시 오스만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다만 남성들이 모이는 목욕탕인 *하맘(hamam)*과 커피하우스 같은 도시 공간에서는 남성 간의 유대가 형성되었고, 문학은 수염이 나지 않은 젊은 남성을 향한 성인 남성의 끌림을 공공연히 찬미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세밀화의 주인공은 왜 이처럼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을까? 답은 오스만의 법체계에서 찾을 수 있다. 제국에는 이슬람 법학의 4대 주요 학파 가운데 하나인 하나피파(Hanafi) *마즈하브(madhhab)*의 법리와, 행정·형사 규범을 담은 술탄의 *카눈(kanun)*이 함께 적용되었다. 꾸란과 순나에 근거해 형량이 정해진 하드(hadd) 형벌과 판사나 당국의 재량에 따른 타지르(taʿzīr) 형벌도 병존했다.
하나피파 법학자들은 남성 간 항문 성교를 뜻하는 *리와타(livâta)*를 통상적인 *지나(zina, 혼외 성관계)*와 동일하게 보지 않았으므로, 이를 지나에 정해진 하드 형벌의 대상으로 자동 분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타이 시대에 처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엄제’ 쉴레이만 1세(Süleyman I) 때 시행된 16세기 술탄 법전은 행위자의 사회적 지위 등에 따라 리와타에 벌금을 부과했고, 카디는 태형·투옥·공개적 모욕 등의 타지르 형벌을 내릴 수 있었다.
현존 기록을 보면 당국은 행위가 널리 알려져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이웃의 고발로 사건이 드러났을 때 개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적 공간에서 벌어진 일을 언제나 추적했다기보다, 공개적인 추문이나 민원이 생겼을 때 처벌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이웃들은 정식 재판을 기다리지 않고 집에 들이닥쳐 두 남자가 관계를 맺던 공간의 가림막을 걷어낸다. 화가는 이를 시각적으로 강조했다. 거대한 붉은 커튼이 구도를 둘로 가르며 ‘숨겨진 것’과 ‘드러난 것’을 나눈다. 커튼이 젖혀지는 순간은 명예와 평판을 뜻하는 *나무스(namus)*를 한순간에 잃는 일을 은유한다.
삽화는 공식적인 공개 망신 형벌인 *테슈히르(teşhir)*의 절차도 보여준다. 이 형벌의 사회적 효력은 구경꾼들의 시선과 비난에서 나왔다.
그림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악사들이다. 처벌받는 사람은 북과 오스만의 겹리드 관악기인 주르나(zurna) 소리에 맞춰 끌려간다. 이런 음악은 보통 흥겨운 결혼식이나 정예 보병대 예니체리의 행진에서 연주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축제의 악기가 공개적 수치를 극대화하는 장치가 된다. 요란한 소리는 사람을 어지럽히고 구경꾼과 이웃을 불러 모았다.
아타이는 이 장면의 긴장감을 그의 시로 전달한다. 먼저, 이웃들이 매복을 준비한다:
그들은 즉시 몇 명의 악사를 데려와
커튼 뒤에 숨긴다.
(Bir niçe mehter getürürler hemân
Perdenüñ ardında iderler nihân)
그다음 그들은 조용히 기다린다:
그들은 주르나를 쥔 채 완전한 침묵 속에 서 있다.
(Zurnaları elde tururlar hamûş)
그리고 갑자기, 망신 주기의 행진 음악이 침묵을 산산조각 낸다:
고막을 찢는 듯한 북소리와 나팔의 울부짖음.
(Tantana-i tabl u dem-i kerre-nây)
그리고 그들은 북과 주르나 소리에 맞춰 엉덩이를 드러낸 채
그를 수치스러운 행렬로 이끌어 온 도시의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Şöhre-i şehr itdiler alay ile
Götin açup tabl ile sürnây ile)
시 네프하튈-에즈하르의 희극적 에피소드
두 번째 세밀화에서 동성 간 접촉은 재판의 이유가 아니라 가벼운 도시 코미디의 소재가 된다.
56a 페이지는 “침대에 함께 있다가 들킨 두 남자"라는 장면을 삽화로 보여준다. 이것은 같은 시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부유한 집에서 손님들이 한 침대에 있는 두 남자를 갑자기 발견한다.
화가는 어색함과 희극적인 노출의 순간을 포착했다. 전경에 있는 촛불을 든 남자의 모습을 주목해 보라. 그의 손에 들린 촛불은 스캔들을 점화할 “불꽃"이 되는 동시에 발각된 연인들을 비추는 빛이 되어, 갑작스러운 폭로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아타이는 이런 재미있는 사고를 좋아했다. 수사본의 인접한 페이지에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다. 거기서는 집에서 기르는 숫양이 바람피우는 남편과 그의 정부가 있는 방으로 들이닥쳐, 아무것도 모르고 있던 아내 앞까지 그들을 밀어낸다.
인기 있는 그림자 연극 카라괴즈(Karagöz)와 같은 오스만 희극 문화는 평등화의 효과가 있었다. 역사가 드로르 제에비(Dror Ze’evi)가 지적하듯, 웃음은 종교 권위의 겉치레를 위축시켰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열정에 취약함을 보여주었다.
아타이 역시 남성 간의 에로틱한 정사와 흔한 남녀 간 불륜을 나란히 놓는다. 그의 시에서는 어느 쪽이든 인간이 욕망 때문에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소동으로 묘사된다.
시인은 등장인물들을 아이러니를 담아 바라보면서도, 감정의 돌발성으로 그들을 변호한다:
사랑의 슬픔이라는 칼날이 그대에게 닿는다면,
돌 같은 마음이라도 불꽃을 튀기리라.
(Tîğ-ı gam-ı 'ışk dokunsa yine
Seng ise de dil olur âteş-zene)
사랑은 존재를 위한 영약이요,
사랑은 관조의 세계를 열어 보이는 거울이라.
('Işkdır iksîr-i berâ-yı vücûd
'Işkdır âyîne-güşâ-yı şühûd)
마지막 대구에서 아타이는 고전 튀르키예 서정시의 특징인 ‘거울’(아이네, âyîne)과 ‘관조’(쉬후드, şühûd)의 은유를 솜씨 좋게 활용한다. 한편으로는 사랑이 신성한 진리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고상한 수피 시의 어법을 흉내 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은유를 갑자기 세속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린다. 이 희극적 맥락에서 ‘사랑의 거울’은 철저히 숨겨졌던 두 연인의 비밀을 문자 그대로 모두의 눈앞에 드러낸다.
시 헤프트 한 속의 영적인 사랑
127a면에는 세 번째 세밀화가 실려 있다. 헤프트 한 (일곱 가지 이야기)의 한 장면으로, 제목은 「자기 아들과 그를 사랑하게 된 가정교사의 그림을 바라보는 왕」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현명한 가정교사(랄라(lala))가 제자인 왕자를 향한 금지된 비밀스러운 열정으로 불타고 있었다. 현실에서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없었던 그는 화가를 고용하여 왕자와 다정하게 포옹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초상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한다.
마침내 그 그림이 정원의 나무에 걸린다. 이때 왕(왕자의 아버지)이 자기 궁의 창밖을 내다보다가 초상화를 발견한다. 화가가 시선과 감정을 너무나 정확하게 표현한 나머지, 통치자는 말 한마디 없이도 가정교사의 비밀스러운 열정을 분명히 알게 된다.
세밀화 위쪽에 우아한 나스탈리크(nasta’liq) 서체로 쓰인 텍스트는 이 그림이 어떻게 비밀을 누설했는지 아이러니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림 위에 뚜렷이 모습을 드러내어
사랑에 빠진 이의 비밀을 밝혀냈네.
사랑하는 이와 입을 맞추고 포옹하는 모습…
이렇듯 생명 없는 그림이 모든 진실을 보여준다네.
(...safha üzere hüveydâ
Eyledi keşf-i râz-ı aşk-bâz
Resm-i bûs u kenâr-ı cânâne
Şöyle gösterir nakş-ı bî-cân)
여기서 아타이의 시는 역설을 강조한다. 화가가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그린 “생명 없는 초상화”(나크시 비잔(nakş-ı bî-cân))가 가장 목소리 큰 밀고자가 되었던 것이다.
오스만 문학 연구자 셀림 쿠루(Selim Kuru)는 당시 문학 문화가 이런 욕망을 서로 다른 말로 구분했다고 설명한다. 첫 번째는 마흐부브페레스트(mahbûb-perest), 곧 ‘사랑받는 이를 숭배하는 사람’이다. 젊은이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되 육체적 소유를 추구하지 않는 교양인을 가리키는 문학적 이상으로, 큰 자제력을 요구하며 세련된 시로 표현되었다.
두 번째는 굴람파레(gulâm-pâre), 곧 ‘소년에게 집착하는 사람’이다. 육체적 쾌락에 굴복해 품위를 잃은 사람을 가리키는 경멸적 표현이었다. 이는 당시 문학과 도덕 담론의 구분이지, 오늘날의 성적 지향 분류와 같은 것은 아니다.
참고문헌 및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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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림 S. 쿠루(Selim S. Kuru). 『섹슈얼리티 이전의 욕망: 인터뷰 (Desire Before Sexuality: An Interview)』. (JHI 블로그 (JHI Blog)). 2026.
- 월터스 미술관(Walters Art Museum). 수사본 W.666 (1721) 및 폴리오 51b, 56a, 57b, 59a, 127a에 대한 설명.
🇹🇷 튀르키예 LGBT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