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달린 금제 남근 표장을 지닌 게이 관리들의 1916년 비밀 결사 부패 사건

제1차 세계대전 중 횡령 수사가 어떻게 고대 문화를 숭상하고 남성을 사랑한 관리들의 비밀 모임을 드러냈는가.

목차
날개 달린 금제 남근 표장을 지닌 게이 관리들의 1916년 비밀 결사 부패 사건

1916년 봄 러시아 제국은 심각한 물류 위기에 빠져 있었다. 1915년 러시아군의 대후퇴 이후 수십만 민간인이 난민이 되어 철도로 몰리면서 교통망이 마비됐다. 제1차 세계대전 전선의 병사들은 포탄과 식량, 가축 사료 부족에 시달렸다. 기병대의 말은 하루에 건초 2파운드밖에 받지 못해 떼죽음을 당했다.

이 재난의 한복판에서 당시 수도 페트로그라드에 전례 없는 추문이 터졌다. 리가 지방법원 검사 표트르 니콜라예비치 야코비(Пётр Николаевич Якоби)가 수백만 루블 규모의 군수 계약을 배분하던 포병총국의 거대한 부패 구조를 적발한 것이다.

수사는 국가 예산의 대규모 횡령뿐 아니라 부처 안의 비밀 동성애자 모임도 드러냈다.

이 사건의 전개는 역사가이자 언론인 미하일 콘스탄티노비치 렘케(Михаил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Лемке)의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군대가 피 흘리는 동안 고위 관리들은 훔친 돈을 황금빛 이교도 부적과 폐쇄적인 엘리트 모임의 생활에 썼다는 기이한 광경이 그의 기록에 담겼다.

관리들은 어떻게 포병 계약에서 돈을 훔쳤는가

전쟁 중 포병 당국은 민간업체에 발주할 막대한 예산을 받았다. 계약 배분은 불투명했고 개인적 연줄에 좌우됐다. 유명 프리마 발레리나 마틸다 크셰신스카야(Матильда Кшесинская)의 살롱은 군수산업의 비밀 ‘거래소’처럼 기능해 대형 외국 무기 제조사의 이익을 대변했다.

수사는 군 수뇌부에서 곧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가린(Николай Павлович Гарин)과 맞닥뜨렸다. 그는 원로원 의원이자 국가평의회 의원이며 1916~1917년 전쟁부 차관이었다. 이런 관리들은 유산탄과 금속 납품 계약을 페이퍼컴퍼니에 정상가의 몇 배로 내주었다. 1916년 3월 취임한 전쟁부 장관 드미트리 사벨리예비치 슈바예프(Дмитрий Савельевич Шуваев)는 야코비를 가린에게 보냈다.

야코비가 가린을 압수수색하러 왔을 때 가린은 수사관이 보는 앞에서 증거를 없애려 했다. 연루자 여럿이 과거에도 절도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문서를 찢었다. 공개적인 추문이 나라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며 사건을 덮으라고 야코비를 압박하기도 했다.

“포병 당국의 비리를 둘러싼 수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고 있다. 슈바예프는 수사관 야코비를 가린에게 보냈다. 가린은 우선 연루자 여럿이 과거 이미 그의 수사를 받았으나 처벌받지 않고 군에 포병 탄약을 공급하는 일에 남았다가 다시 적발됐다고 적힌 문서를 사건 기록에서 뜯어냈다.

이어 가린은 야코비가 사실상 아무것도 아닌 일로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연루된 거대한 사건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의아해했다. 너무 멀리 나가지 말라고 충고했고,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한 것은 좀 더 조용한 수사였다고 암시했다. 끝내는 나라에서 혁명적 동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처럼 큰 사건을 폭로하면 정부와 최고 권력의 적들만 이롭게 된다는 사실을 법무부가 이해하지 못한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격분한 야코비가 법무부 장관 흐보스토프에게 이를 보고하자, 지금까지 조사한 모든 내용을 방대한 보고서로 작성해 황제에게 올리고 앞으로의 지시를 받기로 했다. 타자기로 작성한 54장짜리 보고서가 제출됐고, 황제는 이토록 추악한 사건은 끝까지 수사해야 한다고 적었다. 이제 수사가 다시 시작됐다.”

— 미하일 렘케, 1916년 5월 4일 일기

범죄자들을 비호한 사람은 포병 총감인 세르게이 미하일로비치 로마노프 대공이었다. 이처럼 높은 자리에 후원자가 있었기에 야코비는 황제 니콜라이 2세에게 직접 호소해야 했다.

수색을 계속하자 예상 밖의 물건이 나왔다. 부패 모임의 구성원마다 날개 달린 금제 남근 표장을 하나씩 갖고 있었다.

부처 내부의 비밀 게이 서클

포병 당국 관리들에게 동성애는 내부 결속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됐다. 형법을 어긴 횡령뿐 아니라 당시 도덕과 법의 규범에 어긋난 동성 관계까지 공유하면서 집단은 극도로 폐쇄됐다. 누군가 배신하면 모두가 즉시 지위와 자유, 명예를 잃을 수 있었다. 비밀스러운 성생활은 이 범죄 집단의 상호 충성을 보장했다.

그러나 렘케에 따르면 압수한 편지는 구성원들의 관계가 이해타산에만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줬다. 편지에는 질투와 사랑, 복잡한 개인사가 가득했다.

그들의 서신을 보면 모임 구성원들 사이에 사랑에서 비롯된 관계가 있었고, 그들이 쓴 질투 어린 편지는 아무리 건전한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그토록 질투하기는 어려울 정도였다…… 그렇다, 우리는 내리막을 걷고 있다. 유럽의 열차처럼 빠르게 굴러 떨어진다…… 실로 로마 제국이 몰락하던 시대다……

— 미하일 렘케, 1916년 5월 4일 일기

날개 달린 금빛 남근

날개 달린 금제 남근을 비밀 표장으로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러시아 제국의 관리들은 고전식 김나지움 교육을 받아 그리스·로마 고대 문화를 잘 알았다. 가린도 명문 제국 법률학교를 졸업하고 파리 법학부의 강의를 들었다.

고대 로마에는 남성적 힘과 보호를 상징하는 신 파스키누스(Fascinus)가 있었다. 로마 장군들은 개선식 때 군중의 시기와 신들의 분노를 피하려고 날개 달린 남근 모양의 부적을 사용했다. 영어 fascinate(매혹하다)도 이 상징으로 ‘마법을 걸다’라는 뜻의 라틴어 fascinare에서 유래했다.

그렇다면 이 악당들은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을까? 일부는 가장 저열하고 타락한 욕망을 채우는 데 썼다. 도둑 양반들이 일종의 조직과도 같은 남색가 모임을 만들었고, 각자 수색에서 발견된 표장, 곧 날개 달린 금제 남근을 하나씩 지니고 있었다……

— 미하일 렘케, 1916년 5월 4일 일기

카를 프리드리히 플뢰겔의 『괴기희극사』 1862년판에 실린 남근 부적 삽화. 위키미디어.
카를 프리드리히 플뢰겔의 『괴기희극사』 1862년판에 실린 남근 부적 삽화. 위키미디어.

포병 당국의 부패 관리들은 이 오래된 주술적 방패를 택했다. 막대한 돈을 훔친 채 수사관을 두려워하며 살았으니, 금제 부적은 사법 당국이 가져올 ‘액운’을 물리치려는 물건이었던 듯하다.

엄격한 정교회 제국에서 이런 물건을 주문 제작하는 일은 일종의 문화적 반항이기도 했다. 관리들은 자신을 엄격한 그리스도교 윤리의 족쇄를 벗고 국가의 법 위에 선 새로운 로마 귀족, 곧 파트리키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유럽에는 이미 비슷한 유행이 있었다. 날개 달린 남근은 이른바 리베르탱(libertine)의 폐쇄적 사교 모임을 연상시킨다. 리베르탱은 행동과 쾌락, 사생활에서 교회와 도덕의 제약을 공공연히 거부한 이전 세기 유럽의 귀족과 지식인이었다. 당시 러시아 귀족은 영국 상류층과 긴밀히 교류했고, 이런 국제적인 비밀 남성 클럽의 전통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교양인 사이에는 필명 디오네오로 글을 쓴 논객 이사크 블라디미로비치 시클롭스키(Исаак Владимирович Шкловский)가 만든 문장학 농담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스몰렌스크의 옛 문장에 대포가 그려진 것은 중세 장인들이 날개 달린 남근이 새겨진 고대 인장을 보고 대포로 착각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현대 문장학은 이 가설을 부정하며, 원래 그림은 전혀 다른 물건인 지팡이나 리본이었다고 본다.

이 우스갯소리의 인기는 교양인들이 국가 상징을 얼마나 냉소적으로 바라봤는지 보여 준다. 1916년에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군의 대포에 쓰여야 할 수백만 루블이 도둑들 손에서 금제 남근으로 바뀐 것이다.

수포로 돌아간 사건

현재까지 공개된 문서에서는 이 사건의 최종 판결을 찾지 못했다. 1917년 혁명이 시작되면서 포병 당국 사건이 재판까지 가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가린이 이후 어떻게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1919년 한 증인인 V. S. 헤신은 모스크바의 수용소에 가린과 함께 갇혔다가 가린이 석방됐다고 회고했다. 1935년 소련 보안기관은 레닌그라드에서 옛 제정 엘리트를 도시에서 몰아내려는 대규모 ‘구인(舊人)’ 작전을 벌였다. 한때 경찰국장을 지낸 가린은 체포 명단 첫머리에 올라 있었고 우파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그의 행적은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다.

문헌 및 출처
  • M. K. 렘케 (Lemke, M. K.). 『차르의 본부에서 보낸 250일 (250 Days at the Tsar’s Headquarters)』. 1920.
  • A. A. 폴리바노프 (Polivanov, A. A.). 『육군 장관 및 육군 차관 시절의 일기와 회고록에서 (From Diaries and Memoirs From My Time as Minister of War and Assistant Minister of War)』. 1924.
  • 댄 힐리 (Healey, Dan). 『혁명기 러시아의 동성애적 욕망: 성적 및 젠더 반체제 규제 (Homosexual Desire in Revolutionary Russia: The Regulation of Sexual and Gender Dissent)』. 시카고 대학교 출판부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1.
  • 로라 엥겔스타인 (Engelstein, Laura). 『행복의 열쇠: 세기말 러시아의 성과 근대성 탐구 (The Keys to Happiness: Sex and the Search for Modernity in Fin-de-Siècle Russia)』. 코넬 대학교 출판부 (Cornell University Press). 1992.
  • I. S. 콘 (Kon, I. S.). 『새벽의 달빛: 동성애의 얼굴과 가면 (Moonlight at Dawn: Faces and Masks of Same-Sex Love)』.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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