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에 나타난 신의 여성적 이미지
아세라 제의의 흔적, 예언자들의 모성적 은유, 그리고 성경적 지혜의 여성적 얼굴.
목차

성경과 교회 전통은 하나님을 흔히 아버지, 왕, 심판자, 전사 같은 남성적 이미지로 묘사한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모성적 은유와 여성형 문법, 고대 근동의 종교 세계를 반영하는 흔적도 남아 있다.
이 글의 목적은 성경 텍스트와 그 고대적 맥락에서 신의 어떤 여성적 이미지들이 정확히 발견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이스라엘 종교의 역사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그 목표는 특정한 하나의 이론을 최종 해답으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자료 자체를 더 분명하게 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대 근동의 다신교에서 유일신에 대한 엄격한 믿음(일신교)으로의 전환은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길고 복잡한 과정이었다. 고대 여신들의 제의가 사라지면서 종교적 언어와 신에 대해 말하는 방식도 변화했다.
다신교에서 일신교로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는 고대 근동의 다양하고 다신교적인 세계에서 형성되었다. 이 광활한 지역에는 이집트(Egypt),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 (오늘날 아르메니아 고원(Armenian Highlands) 영토에 있던) 강력한 이웃 왕국 우라르투(Urartu), 그리고 현대의 시리아(Syria), 레바논(Lebanon), 이스라엘 영토인 레반트(Levant)가 포함되었다.
학자 존 아퀘이(John Akwei)가 지적하듯, 다신교에서 일신교로의 전환은 점진적이었다. 고대의 판테온(pantheon, 만신전)에서 신들은 위계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보통 그 정점에는 최고신인 아버지 신(예를 들어, 엘(El))이 섰고, 그 곁에는 그의 신성한 배우자가 있었다.
독일의 이집트학자이자 종교 역사가인 얀 아스만(Jan Assmann)은 고대 다신교가 각기 다른 신들이 세상의 다양한 측면, 즉 하늘, 바다, 전쟁, 풍요, 왕권, 출산, 죽음 등을 책임지는 일관된 시스템이었다고 강조한다.
야훼의 초기 기원은 확실하지 않다. 일부 연구자는 야훼 숭배가 에돔·미디안 등 레반트 남부에서 시작되어 이스라엘의 종교로 들어왔다고 보고, 다른 연구자는 가나안 종교와의 연속성을 더 강조한다. 프란체스카 스타브라코풀루(Francesca Stavrakopoulou)는 야훼가 신들을 거대한 하늘 가족으로 상상하던 후기 청동기·초기 철기 시대의 종교 세계에 뿌리를 두었다고 설명한다.
시간이 지나며 야훼는 엘과 바알 같은 다른 신에게 귀속되던 칭호와 기능을 흡수했다. 일부 연구자는 근동 여신들의 창조적·모성적 특성도 야훼 묘사에 통합되었다고 본다. 다만 개별 이미지가 특정 여신에게서 직접 옮겨 왔는지를 입증하기는 어렵다.
야훼와 그의 아세라
이 역사에서 중요한 존재가 아세라(Asherah), 곧 우가리트 문헌의 아티라트(Athirat)다. 그녀는 엘의 배우자이자 신들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철기 시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일부 집단이 아세라를 야훼와 연결했을 가능성은 명문과 성경의 논쟁적 기록을 통해 제기된다. 그러나 이 관행이 어느 지역과 계층에 얼마나 퍼졌는지는 논쟁 중이다.
오랫동안 성경적 일신교는 이스라엘의 언제나 변함없는 유일한 원초적 신앙이었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이 이러한 시각을 바꿔놓았다. 1975~1976년, 이스라엘의 고고학자 제브 메셸(Ze’ev Meshel)은 기원전 9세기에서 8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고대 요새 쿤틸레트 아즈루드(Kuntillet Ajrud)의 폐허를 조사했다. 그곳에서 발견된 점토 항아리들에는 다음과 같은 명문이 새겨져 있다. “내가 사마리아(Samaria)의 야훼와 그의 아세라의 이름으로 너희를 축복하노라.” 조금 후, 미국의 고고학자 윌리엄 디버(William Dever)는 헤브론(Hebron) 인근의 유대인 매장 동굴에서 유사한 명문을 발견했다. “야훼와 그의 아세라로 말미암아 축복받은 우리야후(Uriyahu), 그가 적들로부터 그를 구원하셨도다.”
이로부터 학문적 논쟁이 일어났다. “아세라"라는 단어는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통적인 해석(예를 들어, 열왕기하 23장 6절에 대한 러시아 성서학자 A. P. 로푸힌(A. P. Lopukhin)의 주석)에서 아세라는 나무로 된 우상-기둥(pole)으로 묘사되었다. 언어학자들 또한 의구심을 가졌다. 고대 히브리어에서는 “그의"와 같은 소유 대명사가 고유 명사에 붙는 경우가 보통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많은 이는 그것이 여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상징인 신성한 나무나 기둥에 관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구약성경은 야훼의 제단 곁에 있는 이 물건을 여러 번 언급한다.
최근에는 다른 설명도 제시되었다. 리처드 헤스(Richard Hess)는 2023년에 공개된 아모리어·아카드어 이중언어 자료를 근거로 ʾšrth의 끝 -h를 ‘그의’라는 소유 접미사가 아니라 이름에 남은 고어 여성형 표지로 읽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널리 합의된 해석은 아니다.
헤스는 이를 아티라트/아세라라는 이름의 옛 형태와 연결해 명문이 제의 물건보다 여신을 가리킨다고 본다. 한국의 구약학자 박성진도 신명기계 편집이 아세라를 여신이 아니라 제의 물건처럼 보이게 했을 가능성을 논의한다. 두 주장 모두 아세라를 여신으로 보는 해석의 근거이지만, 후대 편집자가 문법을 ‘왜곡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윌리엄 디버와 수전 애커먼(Susan Ackerman)은 설령 명문의 아세라가 나무 제의물을 뜻하더라도 상징과 여신의 경계가 숭배자에게는 뚜렷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본다. 명문에서 야훼와 아세라가 함께 축복의 근거로 불린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다만 항아리 그림이 곧 야훼와 아세라의 초상이라는 초기 해석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두 서 있는 형상은 이집트의 베스(Bes) 또는 베스형 존재로 보는 견해가 강하고, 옆의 앉은 인물은 수금을 연주하는 사람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가리트(Ugarit, 가나안인들의 신화가 발견된 시리아의 고대 항구 도시국가)의 텍스트들을 통해 더욱 보완된다. 우가리트의 판테온에서 아세라는 “신들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가졌고 우주적 유모로 묘사되었다. 텍스트들은 갓 태어난 신들이 그녀의 젖을 먹는다고 전한다. 이는 기르고 출산하는 하나님이라는 후대 성경의 이미지들과 연결되는 중요한 유사점이다.
아세라 제의는 신명기 12장에 언급되어 있는데, 여기서 야훼는 자신의 예배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그녀의 성소들을 파괴하라고 명령한다.
유다의 주거지에서는 젖가슴이 강조된 점토 여성 기둥상이 다수 출토되었다. 가정의 보호나 출산, 수유와 관련된 민간 신앙의 물건으로 해석되지만 용도는 확정되지 않았다. 이를 아세라상으로 보는 견해가 널리 알려져 있으나, 어느 조각상에도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아 특정 여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연구자도 있다.

아세라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성경에 40번 등장하지만 번역본에서는 그 의미가 크게 축소된다. 예를 들어 영어 번역에서는 아세라라는 이름 대신 “작은 숲(grove)“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고, 러시아어 번역에서는 “아스타르테(Astarte)”, “기둥(pole)” 또는 “나무(tree)“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열왕기하의 신명기계 서술은 아세라 제의가 왕실과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들어왔다고 비판한다. 므낫세가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다는 기록은 적어도 성경 저자들이 이 숭배를 국가 차원의 문제로 기억했음을 보여 준다. 다만 이 기록은 개혁을 정당화하는 적대적 서술이기도 하므로 제의의 지속 기간과 구체적 형태를 그대로 복원하기는 어렵다.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여호와께서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 열왕기하 21:7
열왕기하는 기원전 7세기 요시야의 개혁 때 아세라 목상과 관련 제의가 성전에서 제거되었다고 전한다. 아세라 숭배가 그때 처음 죄로 선언되었다거나 한 차례 개혁으로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요시야의 개혁과 “아세라에 대한 침묵”
여성적 신상이 널리 사용되었다면 왜 현존 성경은 하나님을 거의 언제나 남성형으로 말할까? 여러 역사가는 이를 기원전 7세기 말 요시야 왕에게 귀속된 종교 개혁과 신명기계 편집 전통에 연결한다. 개혁의 실제 규모와 성경 서술이 형성된 시기는 계속 논쟁 중이다.
학자들은 이 개혁이 신명기(Book of Deuteronomy)의 사상에 기초했기 때문에 종종 이를 “신명기적(Deuteronomistic)” 개혁이라 부른다. 개혁의 목적은 지역 성소들을 파괴함으로써 권력과 예배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중앙집권화하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것이었다.
신명기계 저자와 편집자는 예배의 중앙집중화를 옹호하고, 야훼만을 섬기지 않은 과거를 우상숭배로 재해석해 국가적 재난의 원인으로 설명했다. 마거릿 바커(Margaret Barker)는 어머니 여신과 관련된 옛 성전 전통이 배제되었다는 자신의 가설에 따라 이 개혁을 오히려 ‘배교’라고 평가한다. 이는 일반적 역사 서술이 아니라 바커의 신학적 해석이다.
독일의 신학자 크리스티안 프레벨(Christian Frevel)은 “아세라에 대한 침묵(silence on Asherah)“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예언자들과 편집자 집단은 여신을 의도적으로 침묵시키고 그녀의 이름을 적대적인 신 바알과 묶었다. 그렇기에 예언자 예레미야(Jeremiah)는 여신을 숭배하던 여성들에 대해 그토록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이다.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버지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의 여왕(Queen of Heaven)을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일으키느니라”
– 예레미야 7:18
예레미야의 기록은 여성 신 숭배를 둘러싼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 준다. 기원전 586년 예루살렘이 바빌로니아에 함락된 뒤 이집트에 정착한 유다 공동체의 여성들은 예언자와 논쟁하며, ‘하늘의 여왕’ 숭배를 중단한 뒤 재앙이 닥쳤다고 주장했다. 하늘의 여왕을 아세라, 아스타르테, 이슈타르 가운데 누구와 동일시해야 하는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겠느냐’ 하는지라”
– 예레미야 44:19
이것은 공식적인 종교 노선에 대한 여성의 공개적인 반대를 보여주는 희귀한 성경적 증언이다. A. P. 로푸힌은 그의 주석에서 유대 여성들이 제의를 공개적으로 방어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결국 신명기계 종교관이 규범으로 자리 잡았고, 구약성경의 최종 본문에서는 신을 가리키는 남성형 표현이 우세해졌다.
신의 여성적 이미지에 대한 언어
편집상의 수정 이후에도 고대 히브리어 텍스트에는 신의 여성적 이미지에 대한 언어적 흔적이 남아 있다. 히브리어는 남성 명사와 여성 명사를 엄격하게 구별하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은 특히 두드러진다.
엘 샤다이(El Shaddai)라는 이름
가장 유명한 예 중 하나는 신의 이름인 *엘 샤다이(El Shaddai)*이다. 이 이름은 대개 “전능하신 하나님(God Almighty)“으로 번역되며, 이는 곧바로 엄격한 통치자의 이미지를 그려낸다.
데이비드 비알(David Biale)은 이 이름을 ‘산’을 뜻하는 아카드어 šadû와 ‘젖가슴’을 뜻하는 히브리어 šad에 연결한다. 쌍수형 šāḏayim은 ‘두 젖가슴’을 뜻한다. 이 어원설을 따르면 칭호에는 젖을 먹이고 풍요를 주는 이미지가 담긴다. 그러나 샤다이의 어원은 확정되지 않았으며 ‘산의 신’ 등 여러 설명이 경쟁하므로, ‘젖가슴을 지닌 하나님’이 원래 뜻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엘 샤다이라는 이름은 창세기에서 정확히 출산 및 자손의 축복과 관련된 장면에 자주 등장한다. 가장 분명한 예는 족장 야곱(Jacob)의 축복으로, 그는 아들 요셉(Joseph)에게 전능자(샤다이)의 도우심을 기원하며 시적으로 그분의 이름을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과 연결하고 언어유희를 사용한다.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엘 샤다이)에게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비르코트 샤다임 와라함, birḵōt šāḏayim wā-rāḥam)이리로다”
– 창세기 49:25
여기서 신은 추상적인 왕이나 통치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분은 양육하고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우리의 번역인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러한 육체적 이미지를 훨씬 덜 눈에 띄게 만든다.
동시에 샤다이의 이미지는 단지 젖을 먹이고 돌보는 기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경 텍스트는 능숙하게 자음의 울림을 활용하여, 역설적이게도 이 이름을 šōḏ(“파괴”, “폭력”) 및 day(“충분함”)라는 어원과도 연결한다. 결과적으로 엘 샤다이라는 이름 안에는 생명을 주는 요소와 파괴적인 요소라는 두 가지 상반된 요소가 합쳐져 있다.
이러한 두려운 측면은 예언자 요엘(Joel)이 국가적 재앙을 예측하면서 kəšōḏ miššadday(“샤다이로부터의 파괴같이”)라는 음성적 언어유희를 사용할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부터(샤다이로부터) 이르리로다”
– 요엘 1:15
일부 학자는 이러한 역설적인 이중성에서 고대 근동의 여성 신들이 지닌 직접적인 반향을 본다.
메소포타미아의 이슈타르나 가나안의 아낫(Anat)과 같은 근동의 위대한 여신들은 결코 부드러운 어머니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풍요, 성, 출산뿐만 아니라 맹렬한 전쟁, 유혈 사태, 폭풍까지도 관장했다. 생명을 주기도 하고 맹렬히 앗아가기도 하는 이 가공할 만한 전투적인 모성의 에너지가 엘 샤다이라는 성경적 이미지의 일부가 되었을 수도 있다.
긍휼의 어휘
여성의 육체성은 또한 신의 자비에 대한 언어에도 스며들어 있다. 고대 히브리어로 “자비”, “긍휼"을 뜻하는 raḥămîm은 “자궁(womb, uterus)“을 뜻하는 어원 reḥem에서 왔다. 구약성경이 신의 자비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모성의 자궁과 관련된 단어를 사용한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이를 특히 생생하게 전달한다.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창자가 들끓으니(hāmû mēʿay lô; raḥēm ʾăraḥămennû)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예레미야 31:20
이 구절에서 “내 창자가 들끓는다”에 해당하는 하무 메아이(hāmû mēʿay)는 내장이 요동한다는 신체적 감정을 나타낸다. 이어지는 라헴 아라하멘누(raḥēm ʾăraḥămennû)는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겠다”라는 뜻이다. 긍휼을 나타내는 어근 r-ḥ-m은 ‘자궁’을 뜻하는 레헴(reḥem)과 연결되므로 모성적 울림이 있지만, 이 문장의 ‘창자’ 자체가 자궁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영(루아흐)
성경의 맨 처음인 창세기 1장 2절에서 하나님의 영은 태고의 혼돈의 “수면 위에 운행"하신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루아흐, rûaḥ)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mĕraḥep̱eṯ)”
– 창세기 1:2
‘영·숨·바람’을 뜻하는 루아흐(rûaḥ)는 히브리어에서 대체로 여성 명사다. 따라서 “운행하다”라는 분사 메라헤페트(mĕraḥep̱eṯ)도 여성형으로 일치한다. 이는 문법적 성의 일치이지 하나님의 영을 여성 인격으로 규정하는 표현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성형 명사와 생명을 품는 듯한 움직임이 결합된 이 문장은 페미니스트·퀴어 신학에서 창조에 임한 하나님의 여성적 이미지로 읽혀 왔다.
같은 어근은 신명기 32장 11절에서 둥지 위를 맴도는 독수리를 묘사한다.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yəraḥēp̱)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 신명기 32:11
두 본문을 연결하면 창조의 움직임을 새가 날개로 새끼를 보호하듯 생명을 품는 행위로 읽을 수 있다. 다만 신명기의 독수리는 문법상 남성 명사이고 동사도 남성형이므로, 본문 자체가 반드시 ‘어머니 새’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훗날 성경이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이러한 문법적 특징은 사라졌다.
시적이고 예언자적인 은유
고대 근동의 가부장적 구조와 성전 제의의 엄격한 남성 위계는 종교의 공식 언어를 크게 결정지었고, 거기서 신은 왕, 주님, 전사로 묘사되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파괴, 바빌론 유수, 민족 멸망의 위협과 같은 심각한 국가적 위기의 시기에는 공식 언어로는 불충분함이 입증되었다.
신적 긍휼의 깊이, 무조건적인 사랑, 그리고 고통스러운 역사적 재탄생의 과정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 예언자들과 시편 기자들은 여성의 신체적, 사회적 경험에 기반한 시적 은유를 사용했다.
해산의 고통에 대한 은유
바빌론 유수를 묘사하는 텍스트들에서 역사적 격변은 새로운 생명이 출현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 묘사된다. 이사야 42장에서 이러한 대조는 가능한 한 날카롭게 표현된다. 13절에서 신은 전사의 모습으로 행동하지만, 바로 다음 절에서 그분은 산모의 언어로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투기를 분발하여 크게 외쳐 그 대적을 크게 치시리로다 내가 오랫동안 조용하며 잠잠하고 참았으나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kay-yōlēḏâ ʾep̄ʿeh; ʾeššōm wə-ʾešʾap̄ yaḥad)”
– 이사야 42:13-14
성서학자 파트리샤 툴(Patricia Tull)은 여기서 신이 해산의 고통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행동을 묘사한다고 지적한다. 새로운 역사적 질서, 즉 바빌론으로부터의 해방은 고통스러운 노력을 통해 탄생한다. 이 은유의 힘은 정교회 주해에서도 인정받는다. 러시아 정교회의 기념비적인 주석서인 『주해 성경(Explanatory Bible)』에서 A. P. 로푸힌은 이 구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았다.
“이 사상을 표현하기 위한 이미지 그 자체는 산모와의 비교에서 가져온 것이다. 산모는 오랫동안 진통의 고통을 묵묵히 견뎌내지만, 마침내 마지막 순간에는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큰 비명으로 이를 드러낸다.”
– 로푸힌의 주해 성경
전사의 외침과 산모의 거친 숨소리가 한 구절에 결합되어 있는 것은 압도적인 힘과 생명을 주는 고통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시는 성경적 신의 다면성을 보여준다.
위로하는 어머니의 이미지
모성적 은유로 돌아가는 것은 예언자들이 유배자들의 트라우마를 다루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백성이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잊혔다고 느낄 때 이사야는 가장 강력한 생물학적, 정서적 유대인, 젖먹이에 대한 수유부의 애착에 호소했다. 지상의 왕이나 아버지는 반역하는 신하를 내칠 수 있지만 어머니와 신은 다르게 행동한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 이사야 49:15
그리고: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 이사야 66:13
이 구절들에 대해 주석을 달면서 A. P. 로푸힌은 모성적 돌봄이 지상의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라고 지적한다. 신은 육체적으로 조건 지어진 이 절대적인 애착에 신실한 백성과의 관계를 비유하시며, 최종적인 단절은 불가능함을 보증하신다.
산파 이미지의 신
시편에서 신은 아기의 분만을 돕는 여성인 산파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고대 세계에서 아기의 탄생은 가장 극심한 위험과 죽음의 벼랑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 순간 산파는 주요한 구원의 인물이었다.
자신의 극도의 취약함과 세상에서의 무력함을 묘사하며 시편 기자는 이 사실에 호소한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 시편 22:9-10
성서학자 L. 줄리아나 클라센스(L. Juliana Claassens)는 이 이미지를 “근육질의 조산(muscular midwifery)“이라 부른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산파는 전적으로 여성이었기 때문에, 신이 태에서 아기를 받아낸다는 은유는 신체적 취약함의 순간에 사람 곁에 신이 직접 임재하심을 강조한다. 신은 숙련된 산파처럼 그분의 손으로 생명을 구하신다.
보모와 유모의 이미지
호세아서에서는 젠더의 경계가 특히 선명하게 흐려진다. 한 책 안에서 신은 배신당한 질투심 많은 남편으로도, 새끼를 지키는 사나운 암곰으로도,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다정한 어머니나 보모로도 나타난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몸을 굽혀 먹을 것을 주었노라”
— 호세아 11:1–4
여기서 예언자는 한 민족 전체를 에브라임이라 부르며 철없는 어린아이로 의인화한다. 신은 자기 백성과의 관계를 아기를 보살피는 어머니의 지극히 친밀한 은유로 설명한다.
출애굽 서사에서 흥미로운 모티프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모세(Moses)는 민수기(Book of Numbers) 11장에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책임을 신에게 불평한다. 그는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자신에게 요구될 일이 아니라 유모(젖먹이는 어머니)나 보모의 일이며, 이는 신 그 자신의 일이라고 항의한다.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 민수기 11:12
국가 전체를 돌보는 막중한 짐이 유모의 고단하고 일상적인 노동과 동일시된다. 모세는 이 역할이 마땅히 창조주의 것이라고 강조한다.
젖을 뗀 아이와 젖먹이는 어머니 사이의 신체적 연결을 통해 표현되는 신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의 유사한 이미지가 시편(Psalms)에 나타난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 시편 131:2
일상적인 여성의 노동
출산과 같은 극한 상황 외에도, 성경의 텍스트들은 일상적이고 관례적인 여성의 노동을 통해 신의 돌보심을 개념화한다. 작가이자 학자인 로런 위너(Lauren Winner)는 신이 종종 전통적인 여성의 가사 노동을 수행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신은 재봉사 역할을 하여 아담과 이브의 옷을 짓는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 창세기 3:21
신약성경에서 이러한 전통은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의 비유로 이어진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장 유명한 비유 중 하나는 누룩의 비유이다. 이 비유에서 신의 임재와 세상의 변화는 부엌에서의 일상적인 여성의 노동에 비유된다.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 누가복음 13:20-21
여기서 세상의 영적 변화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과정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절대적으로 필요한 여성의 일에 비유된다.
주목할 만한 세부 사항은 “가루 서 말(sixty pounds of flour)"(약 40리터)이 100명이 먹을 빵을 굽기에 충분한 엄청난 양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반죽통 앞에서의 여성의 가사 노동은 거대한 신학적 은유가 된다. 여성이 대가족이나 전체 공동체를 먹이듯이, 신도 비밀스럽지만 포괄적이고 필연적으로 모든 피조물을 먹이고 변화시키신다는 것이다.
새끼에 대한 공격적인 보호
구약성경에서 신의 여성적 이미지는 부드러움뿐만 아니라 자식을 보호하기 위한 극단적인 분노와 공격성의 표출과도 관련이 있다. 예언자 호세아(Hosea)서에서 신은 새끼를 빼앗겨 자신의 새끼를 위협하는 자는 누구든 찢어버릴 준비가 된 암곰에 비유된다.
“내가 새끼 잃은 곰 같이 그들을 만나 그의 염통 꺼풀을 찢고 거기서 암사자 같이 그들을 삼키리라 들짐승이 그들을 찢으리라”
– 호세아 13:8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신명기 32장 11절의 어미 독수리의 이미지와, 자신의 날개 아래 새끼들에게 절대적인 안전을 제공하는 새의 이미지도 포함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 시편 91:4
호크마와 소피아

성경 전통에서 가장 발전된 여성 인물 중 하나는 지혜이다. 히브리어로는 *호크마(Chokhmah)*이고 그리스어로는 *소피아(Sophia)*이다. 두 단어 모두 여성형 명사이다.
지혜 문학, 특히 잠언에서 지혜는 단순한 추상 개념을 넘어 여성 화자로 의인화되어 하나님 곁에서 말하고 행동한다.
잠언 8장에서 호크마는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부터 자신이 존재했다고 선언하며 1인칭 독백을 전한다.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 잠언 8:22-30
헬레니즘 시대에는 이 이미지가 더욱 발전했다. 그리스어로 쓰인 『지혜서』는 가톨릭과 정교회에서는 정경 또는 제2정경으로 받아들이고,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분류한다. 이 책은 소피아에게 우주적 규모를 부여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반영하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녀는 신의 권능의 입김이요, 전능자의 영광의 순수한 발출이다. 그러므로 어떠한 더러운 것도 그녀에게 들어오지 못한다. 그녀는 영원한 빛의 반영이요, 신의 역사의 흠 없는 거울이며, 그의 선하심의 형상이다.”
– 지혜서 7:25-26
이 책에서 소피아는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갈망하는 신비로운 신부처럼 등장한다. 일부 학자는 이를 우주의 통치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여성적 측면에 가까운 강한 의인화로 읽는다. 다른 학자는 어디까지나 하나님에게서 나온 지혜의 문학적 의인화로 본다.
여성형 신적 임재의 이미지는 이후 유대교 신비주의에서도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셰키나(Shekhinah)는 랍비 문헌을 거쳐 카발라에서 여성적 신성, 신부와 어머니의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셰키나는 유배된 백성과 함께하고, 일부 카발라 체계에서는 신성 안의 남성적 측면과 다시 결합해야 하는 여성적 측면으로 이해된다. 이를 성경의 소피아가 곧바로 셰키나로 ‘진화한’ 단선적 계보로 보기는 어렵다.
기독교적 맥락에서 성경의 소피아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 종교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Vladimir Solovyov)는 이 이미지를 자신의 사상 체계의 중심 요소인 “영원한 여성성(Eternal Femininity)"(또는 세계의 영혼)이라는 개념으로 바꾸었다. 솔로비요프에게 소피아는 사변적인 알레고리가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실제적이고 살아있는 영적 존재, 신 그 자신 안의 여성적 원리로 인식했다. 그는 심지어 환상 속에서 그에게 나타난 소피아와의 조우라는 자신의 신비주의적 경험에 대한 시적인 묘사를 남기기도 했다.
솔로비요프의 사상은 소피아학(sophiology)이라는 전체 철학 운동을 낳았으며, 이는 사제이자 사상가인 파벨 플로렌스키(Pavel Florensky)와 세르기우스 불가코프(Sergius Bulgakov)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다. 특히 불가코프는 소피아를 세상을 향한 신의 영원무궁한 설계, 그의 창조적인 사랑이라고 썼다.
1935년 모스크바 총대주교청과 러시아 해외 정교회는 각각 불가코프의 소피아론을 정교회 교리와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를 지지한 신학자들은 불가코프가 ‘네 번째 위격’을 가르쳤다는 비판은 그의 사상을 오해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소피아론은 공식 교리가 아니지만 정교회 사상사에서 신성의 여성적 이미지를 가장 멀리 발전시킨 논쟁적 시도로 남았다.
결론
구약성경은 하나님을 남성적으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전사와 왕, 주님이라는 명칭이 지배적이지만, 아세라 숭배를 둘러싼 역사적 기억과 논쟁적인 엘 샤다이 어원, 문법상 여성 명사인 루아흐, 예언서의 모성적 은유, 여성으로 의인화된 지혜가 함께 존재한다. 이 자료들은 성격과 증거 수준이 서로 다르므로 하나의 잃어버린 ‘여성 하나님’ 전통으로 합쳐서는 안 된다.
페미니스트 신학 및 퀴어 신학 학자들이 오늘날 이 텍스트들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성경 자체에 대한 정직한 역사적, 문헌학적 독해는 지나치게 단순한 가부장적 도식을 무너뜨린다. 이는 신의 임재가 인간의 어떠한 젠더 범주에도 들어맞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성경 전통은 신성에 관한 대화에 있어 후대의 단순화된 해석들이 흔히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뉘앙스를 알고 있다. 구약성경의 신은 엄격한 천상의 통치자일 뿐만 아니라, 젖을 먹이는 어머니, 산파, 그리고 창조적인 지혜로서—우리의 어떠한 젠더 개념도 초월하고 통합하는 힘을 지닌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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