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남자의 성관계를 기록한 고대 이탈리아 주전자의 그리스어 명문
살레르노에서 발견된 기원전 5세기 유물. 명문은 그리스인과 에트루리아인 남자를 성적 파트너로 언급한다.

1963년 이탈리아 남부의 오늘날 살레르노에 자리한 고대 프라테 취락의 묘지에서 포도주를 담는 작은 토기 주전자, 올페가 발견되었다. 그리스어로 새긴 네 개의 짧은 문장은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욕망하는지 이야기한다. 그중 하나는 볼카스라는 남자가 다른 남자인 아폴로도로스와 항문 성교를 한다고 전한다.
올페는 기원전 5세기 전반 그리스 도시 포세이도니아에서 만들어졌고, 에트루리아인이 살던 이웃 취락의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 명문은 그리스인, 에트루리아인, 이 지역의 이탈리아계 여러 민족이 어떻게 나란히 살았는지 보여 주는 드문 사례다.
주전자에 무엇이 쓰여 있나
명문은 두 줄로 몸통을 한 바퀴 돈다. 글자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였다. 에트루리아 문화 연구자 소피 페라르는 그 배열을 이렇게 설명한다. 각 줄은 절반으로 나뉘며, 두 절반은 중심에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읽혀 마치 거울상과 같다.
아래는 고대 명문 전문가 루이지 베키오의 판독을 일반적인 그리스 문자로 옮긴 것이다. 한 줄에 한 문장을 실었다.
Ἀπολλόδωρος · Ξύλλας · ἔραται
Ϝόλχας · ἀπύγιζε · Ἀπολλόδωρον
Ὀνάτας · Νιξῶς · ἔραται
Ὕβριχος · Παρμύνιος · ἤραται
라틴 문자 전사에서 w는 고대 그리스 문자 Ϝ(디감마)를 나타내며, ē와 ō 위의 가로선은 장모음을 뜻한다.
Apollodōros · Xyllas · eratai
Wolchas · apygize · Apollodōron
Onatas · Nixōs · eratai
Hybrichos · Parmynios · ēratai
아래 번역은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아이르통 폴리니가 인용한 고고학자 안젤라 폰트란돌포의 판독을 따른다.
아폴로도로스는 크실라를 욕망한다.
볼카스는 아폴로도로스에게 삽입한다.
오나타스는 닉소를 욕망한다.
휘브리코스는 파르뮈니스를 사랑했다.
첫째와 셋째 문장의 동사 ἔραται(eratai)는 사랑이나 성적 욕망을 뜻하며 ‘사랑한다’ 또는 ‘욕망한다’로 옮긴다. 넷째 문장에는 ἤραται(ēratai)가 나오는데, 폴리니와 페라르는 이를 ‘사랑했다’, ‘욕망했다’처럼 과거형으로 번역한다.
가장 상스러운 단어 ἀπύγιζε(apygize)는 둘째 문장에 있다. 고전 문헌학자 조반니 체리는 이 단어가 ‘항문에 삽입하다’라는 동사 πυγίζω(pygizō)의 드문 형태라고 보았다. 접두사가 짧아진 뒤 소리가 바뀌면서 이 특이한 형태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체리는 이 표현을 당대의 음란한 구어에 속하는 것으로 보았다.
문법이 역할을 정한다. 볼카스가 행위를 하고, 이름이 대격으로 쓰인 아폴로도로스는 삽입을 받는 쪽이다.
이 일곱 사람은 누구인가
네 문장에 일곱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 이름 외에는 이들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모두 주전자를 주문한 사람의 지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폴로도로스는 두 번 언급되며, 첫 두 문장이 짧은 이야기를 이룬다. 나머지 이름은 한 번씩 나온다. 폴리니는 남자 다섯 명과 여자 두 명으로 센다.
이름을 보면 아폴로도로스와 오나타스는 그리스인이고 볼카스는 에트루리아인이다. 볼카스는 에트루리아 이름 불카를 그리스 문자로 적은 것이다. 전승에 따르면 기원전 520–510년 무렵 로마 카피톨리누스 언덕의 신전을 위해 유피테르 숭배상을 만든 베이이의 장인도 불카라는 이름이었다.
크실라와 닉소는 현지 이탈리아계 민족 출신 여성으로 보인다. 페라르는 두 이름이 토착 삼니움계에서 유래했으나 그리스 문자로 적고 그리스어 발음에 맞췄다고 본다. 그렇다면 첫째와 셋째 문장은 현지 여성을 욕망하는 그리스인들의 이야기다.
휘브리코스와 파르뮈니스는 더 복잡하다. 폴리니는 두 이름에 대응하는 확실한 그리스 이름을 찾지 못했다. 그는 둘 다 현지 이탈리아계 이름이고 두 인물 모두 남자라고 본다. 그러면 마지막 문장은 볼카스와 아폴로도로스의 이야기에 또 한 쌍의 남성을 보탠다.
문헌학자 레나토 아레나는 2006년에 다른 판독을 제안했다. 그에 따르면 파르뮈니스(Πάρμυνις, Parmynis)는 여성이며 휘브리코스의 연인이다. 그는 그 이름을 파라모네 같은 그리스 이름에서 끌어내고 낯선 발음은 현지 방언으로 설명했다. 이 경우 마지막 문장은 남자가 여자를 사랑한 이야기다. 명문에 남성 두 사람이 짝을 이루는 사례가 하나인지 둘인지는 어느 판독을 따르느냐에 달려 있다.
아폴로도로스를 둘러싼 농담
체리는 첫 두 문장의 짜임에 주목했다. 첫째 문장에서 아폴로도로스는 크실라를 욕망한다. 둘째 문장에서는 그의 이름이 맨 끝에 오는데, 이번에는 볼카스가 삽입하는 대상이다. 이 대목은 아폴로도로스로 시작해 아폴로도로스로 끝난다. 두 문장 사이에 쫓아가는 사람이 취해지는 쪽으로 바뀐다.
체리는 이를 농담으로 해석했다. 자유민 남성에게는 능동적 역할이 어울리고, 삽입을 받는 역할은 수치스럽다는 고대 그리스의 규범을 전제로 삼았다. 아폴로도로스가 여자를 쫓지만 정작 자신은 볼카스 아래에 놓이는 것이 웃음의 핵심이다. 체리는 이런 농담이 포도주를 마시는 그리스 연회인 심포시온에서 소리 내어 말해졌을 수 있다고 보았다.
체리는 이 명문을 기원전 1세기 로마 시인 카툴루스의 56번 시와 비교했다. 시의 화자는 젊은 남자가 한 여자와 있는 것을 보고 곧장 그 남자와 성관계를 한다. 같은 기법이다. 먼저 나선 남자가 행위의 대상이 된다. 체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음란한 속담, 노래, 농담의 공통된 레퍼토리가 이따금 글로 옮겨졌기 때문에 닮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올페는 가장 이른 사례 중 하나를 간직한 셈이다.
페라르는 라틴어의 비슷한 모티프 fututor fututus, ‘박던 자가 자기도 박혔다’를 언급한다.
체리는 첫 두 문장을 운문으로도 읽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각 문장은 리듬을 이루는 두 부분으로 나뉘며, 운율은 민요와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의 합창 대목을 닮았다. 그가 옳다면 주전자에는 동성 간 성관계를 소재로 한 음란한 연회 농담이 새겨져 있다.
주전자와 연회
올페는 작고 둥근 몸체와 좁은 목, 받침, 입구보다 높이 솟은 손잡이 하나가 있다. 고고학자 에드워드 로빈슨은 일부분에 광택이 나는 피막을 입혔다고 설명하며, 다른 연구자들은 그 피막이 검다고 덧붙인다. 그릇에 그림은 없으며, 성적인 내용은 모두 글 속에 있다.
연구자들은 점토와 형태를 근거로 제작지를 파악했다. 둘 다 포세이도니아를 가리키며, 글자도 이를 뒷받침한다. 명문에는 이 도시에서 사용한 그리스 알파벳의 지역 변형인 이른바 아카이아식 문자가 쓰였다.
글자는 굽기 전 아직 젖은 점토에 새겼다. 따라서 공방에서 이미 명문을 구상했고, 이 글이 새겨진 상태로 주전자를 쓰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연회에서 이런 주전자는 아마 사람들의 손을 차례로 거쳤을 것이다. 손잡이를 잡고 그릇을 돌려 포도주를 따랐다. 명문이 몸통을 둘러싸고 있어 읽으려면 그릇을 돌려야 했다.
미술사학자 프랑수아 리사라그는 포도주 자체가 거울처럼 명문을 비춰, 그 반사상으로 읽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올페는 어디에서 발견되었나
로마가 부상하기 전에 에트루리아인은 이미 이탈리아의 대부분을 다스렸다. 그들은 고유한 도시, 종교, 언어를 지녔다. 이 언어는 그리스어나 라틴어와 계통상 관계가 없다. 많은 명문이 남아 있으며, 글자는 읽을 수 있지만 의미는 일부만 밝혀졌다.
로마는 에트루리아인에게서 많은 것을 받아들였고, 이후 그들의 도시를 정복했다.
기원전 6세기와 5세기에는 오늘날 나폴리와 살레르노 일대인 캄파니아에도 에트루리아인이 살았다.
그들의 이웃은 그리스인과 이탈리아계 여러 민족이었다.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인은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에 도시를 세웠고, 이 지역은 훗날 마그나 그라이키아, 곧 대그리스라 불렸다. 기원전 600년 무렵 그리스 식민 도시 시바리스에서 온 사람들이 이곳에 포세이도니아를 세웠다. 로마 시대에는 파이스툼이라 불렸다.
이탈리아계 민족이란 오스키인과 삼니움인처럼 라틴어와 가까운 언어를 쓰던 이탈리아의 다른 소규모 토착 집단을 말한다.
프라테는 이르노강 하구에서 약 4킬로미터 떨어진 낮은 언덕에 있었다. 캄파니아 평원과 이탈리아 내륙, 남쪽 해안으로 가는 길이 그곳에서 만났다. 주요 이웃은 에트루리아인 도시 폰테카냐노와 그리스인 도시 포세이도니아였다.
프라테는 기원전 6세기 초에 생겨 서기 5세기 말까지 중요한 취락으로 남았다. 고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구자들은 마르키나 또는 티르세타였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올페는 학술 문헌에서 26/1963호 또는 26/63호로 부르는 무덤에 있었다(번호의 뒷부분은 발굴 연도다). 옆에는 잔과 스키포스 등 다른 음용기가 놓여 있었다. 스키포스는 손잡이 두 개가 달린 깊은 포도주 잔이다.
폰트란돌포는 1987년에 명문을 처음으로 자세히 발표했다. 이후 그리스어 방언, 고대 문학, 에트루리아 문화, 성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이 이 명문을 다루었다.
올페는 현재 살레르노 지방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올페는 기원전 5세기 전반의 유물로 본다. 체리는 다른 부장품을 근거로 기원전 480년과 460년 사이로 보았고, 폴리니는 그 세기의 첫 4분의 1로, 베키오는 2025년에 기원전 480–470년으로 보았다.
명문이 전하는 캄파니아의 세계
폴리니에게 이 올페는 캄파니아의 여러 민족이 긴밀하게 교류했다는 증거다. 주전자는 포세이도니아에서 만들어 프라테로 가져왔다. 명문은 그리스어이며, 이름은 그리스계, 에트루리아계, 이탈리아계다.
페라르는 명문에서 전형적인 그리스식 농담에 그리스답지 않은 특징 하나가 있다고 본다. 그리스의 규범은 남성이 어디서, 언제, 누구와 쾌락을 누릴 수 있는지 구분했다. 여기서는 여성과 남성을 향한 사랑과 ‘위’와 ‘아래’의 역할이 아무런 전환 없이 한 장면에 놓인다. 아폴로도로스는 욕망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삽입을 받는 사람이기도 하다. 페라르는 그리스인보다 풍속이 자유로웠던 에트루리아인이나 이탈리아계 민족의 영향일 수 있다고 본다.
올페는 왜 무덤에 들어갔나
결국 올페는 다른 그릇들과 함께 무덤에 들어갔고, 그 덕에 오늘날까지 남았다. 베키오는 묻힌 사람이 명문에 나오는 인물 중 하나였다고 추측한다. 그렇다면 익숙한 이름을 새긴 주전자를 그 곁에 놓은 이유가 설명된다. 누구의 무덤인지는 모른다. 그릇에 고인의 이름이 없다.
종교적인 의미도 드러나지 않는다. 신들을 부르거나 죽음을 언급하는 말은 없으며, 욕망과 성관계만 나온다.
참고 문헌과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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