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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것’ — 문학과 기억, 퀴어 경험에 관한 마이클 커닝햄의 저서

퓰리처상 수상 작가가 글쓰기라는 기예, 기억, 사랑, 그리고 에이즈 위기의 상실을 반추한다.

마이클 커닝햄의 ‘Unsayable: A Life in Writing’ 도서 표지
‘Unsayable: A Life in Writing’ 도서 표지

2026년 7월 21일, 미국의 유수 출판사 랜덤하우스(Random House)는 퓰리처상 수상 작가이자 에세이스트인 마이클 커닝햄(Michael Cunningham)의 영문 자전적 에세이 ‘말할 수 없는 것: 글쓰기로 살아온 삶’(Unsayable: A Life in Writing)을 출간했다.

마이클 커닝햄은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으로, 퓰리처상과 펜/포크너상을 석권하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 찬사를 받은 1998년작 소설 ‘디 아워스’(The Hours)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세상 끝의 집’(A Home at the End of the World, 1990), ‘살과 피’(Flesh and Blood, 1995), ‘선택된 날들’(Specimen Days, 2005), ‘눈의 여왕’(The Snow Queen, 2014), ‘데이’(Day, 2023) 등이 있다. 수년간 예일 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커닝햄은 인간관계의 연약함, 대안적 가족의 유대, 시간의 흐름, 그리고 기억의 틈새를 깊이 있게 탐구해 왔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자전적 회고와 소설이라는 기예(craft of writing)에 대한 성찰이 유려하게 얽힌 작품이다. 직선적인 연대기적 서술을 지양하고, 커닝햄은 생생한 삶의 일화들과 글쓰기의 비의를 다룬 짤막한 에세이들을 교차 배치한다. 그는 삶의 진실과 허구 사이의 유동적인 경계를 짚어보고,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인물에 숨결을 불어넣는 세부를 포착하는 방식을 분석하며, 군더더기를 가차 없이 덜어내는 퇴고야말로 소설가의 가장 본질적인 덕목임을 역설한다.

언어를 향한 저자의 애착은 유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커닝햄은 세 살 무렵 장난감을 담아두던 초록색 타파웨어 플라스틱 용기의 이름을 대지 못해 겪었던 깊은 무력감을 회고한다. 그 충격은 사물들의 이름을 수집하려는 열망(참나무, 쉐보레, 튤립, 되새)을 촉발시켰다.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세계를 이해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방식이 되었으며, 그의 평생에 걸친 문학적 소명을 낳았다. 캘리포니아에서 보낸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퀴어 정체성을 자각했다. 열다섯 살 여름밤, 수영장 옆에서 짝사랑하던 남학생을 말없이 응시하던 순간을 서정적으로 복원한다. 곧이어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접하면서 지미 헨드릭스의 일렉트릭 기타처럼 강렬한 충격을 받았고, 산문이 인간 의식의 가장 미세한 떨림까지 담아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스탠퍼드 대학교와 명문 아이오와 작가 워크숍(Iowa Writers’ Workshop)에서의 수학 시절, 경제적 궁핍 속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문체를 벼려내던 고투를 솔직하게 증언한다. 낡은 닷지 다트 승용차를 몰고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며 풍경 속에서 소설을 건져 올리고자 했던 여정, 뉴욕 정착, 그리고 한 미술관에서 정신분석가이자 작가인 켄 코벳(Ken Corbett)을 만나 40년 넘게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하게 된 운명적 만남이 이어진다.

이 책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대목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뉴욕을 휩쓴 HIV/에이즈 위기를 정면으로 다룬 ‘전염병의 세월’(Plague Years) 장이다. 커닝햄은 친구와 연인, 동료 예술가와 작가 등 한 세대 전체가 스러져간 참상을 증언한다. 죽음의 상흔과 애도의 정서는 그의 문학적 시선을 형성하고 ‘세상 끝의 집’과 ‘디 아워스’의 심장을 이루었다. 커닝햄에게 글쓰기는 단순한 미적 추구를 넘어, 사회가 애도하기를 거부했던 이들을 기억 속에 아로새기는 퀴어적 애도의 실천이다.

책 제목이 품고 있는 철학적 역설은 ‘말할 수 없는 것’(unsayable)이라는 표현에 집약되어 있다. 이는 죽음과 사랑, 상실의 심연을 언어가 완전히 담아낼 수 없다는 필연적 한계를 뜻한다. 소설가의 길을 백지 앞에서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아마추어로서의 삶’이라 정의하며, 커닝햄은 언어로 온전히 포착하기를 거부하는 것들을 기어이 말하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갈망이야말로 문학의 진정한 위대함을 낳는다고 담담히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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